21일 오후 서울 잠수교에서 열린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멍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맨 앞은 충북 진천에서 올라온 부녀 참가자. 연합뉴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730’을 쳐보세요.
“만삭 때까지 일하다가 6개월 휴직하고 다시 복직한 워킹맘입니다. 저는 (평소에) 멍때릴 시간이 너무 부족하거든요. 원하던 대로 멍때리다보면 90분이 후딱 지나갈 것 같네요. 전국의 워킹맘들 화이팅!”
21일 오후 4시 한강 잠수교. 올해로 6회째인 ‘한강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대회를 주최한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70팀 선발에 3160팀이 신청해 경쟁률은 45대1에 달했다고 한다. 멍때릴 시간이 절실했던 워킹맘은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이날 한강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서울시는 유튜브를 통해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21일 오후 서울 잠수교에서 열린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나온 워킹맘 참가자. 손에는 아기 장난감인 ‘꼬꼬맘’이 들려있다. 서울시 유튜브 갈무리
엄연히 ‘대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수상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충북 진천에서 딸과 함께 왔다는 한 아버지는 “등수와는 상관없이 딸이 머리(에 든 고민 등을) 다 비우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흰 수염이 인상적인 ‘시니어 모델’ 지망생 윤세만씨도 “매스컴을 보다가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한 줄로 지나가는 걸 우연히 봤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멍때리면서 편안한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참가했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서울 잠수교에서 열린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멍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맨 앞은 ‘시니어 모델’을 지망하는 는 윤세만씨. 연합뉴스
1969년생으로 지난해 군에서 중령으로 전역했다는 한 참가자는 머리에 파란색 파마 가발을 쓰고 왔다. 그는 “그동안 짜여있던 틀에서 벗어나 미쳐버리고 싶어서 나왔다”고 밝혔다. 참가자의 연령대를 살펴보면 20대가 26명으로(37%) 가장 많았고 30대 25명(36%), 40대 9명(13%), 50대와 20대 미만이 각각 4명(6%), 60대 이상 2명(3%) 순이다.
21일 오후 서울 잠수교에서 열린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멍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연합뉴스
멍을 때려야 하는 시간은 총 90분. 길다면 긴 이 시간 동안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본인만의 전략을 묻자 아동극 배우인 김다인씨는 “우승할 생각을 가지고 임하면 멍이 잘 안 때려진다”며 “오히려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밝혔다.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 우승자인 배우 정성인씨가 대회 도중 멍을 때리고 있다. 서울시 유튜브 갈무리
참가자별 심박수를 측정(안정적인 추이를 보여야함)해 시민 투표와 합산한 결과, 이날의 우승자는 턱시도를 차려입고 온 배우 정성인씨였다. 정씨는 “수상 자체를 생각을 안 하고 와서 (우승을 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이날 대회에는 가수 겸 방송인 강남씨도 빨간 셔츠에 노란 바지의 ‘짱구’ 복장을 하고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21일 오후 서울 잠수교에서 산책 중이던 반려견이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를 관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