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웬디군.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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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웬디(11)군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난민 2세다. 지난 15일 경기도 안산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그의 일상은 학습지 숙제에 쫓기고, 피아노 학원에서 ‘체르니100’을 배우는 등 여느 또래와 다를 게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남다른 운동 신경. 2년 전 학교 체육선생님 제안으로 씨름을 시작했고, 입문 두달 만에 전국어린이씨름왕대회에서 우승했다. 지난 2년간 일곱번 대회에 나가 네번 우승했을 정도로 실력이 좋다. 그러나 오는 27일 열리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한다.
씨름 꿈나무가 대회 참가 권리마저 빼앗긴 것은, 전국체전 참가 자격이 ‘대한민국 국민’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2010년 한국에 온 김웬디군의 부모는 2018년 난민 인정을 받았으나 국적을 획득하진 못했다. 김웬디군도 마찬가지다.
매일 2~3시간 친구들과 함께 훈련하지만, 대회 날에는 홀로 학교에 남아야 한다. 김웬디군은 “괜찮아요. 저는 외국인이니까요”라고 말한다. 요즘은 축구로 종목을 바꿔볼까 고민 중이다. 그는 “프랑스에 가서 음바페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 도르카스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 씨름대회에 못 나간다는 걸 알고 아이가 정말 많이 슬퍼했어요. 씨름은 한국에서밖에 못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난민 2세 김웬디(11)군이 18일 오후 안산 매화초등학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하고, 한국 문화 속에서 살아왔음에도, 한국 스포츠계는 아직 김웬디군과 같은 이들에게 인색하다. 이주사회라는 현실은 마주했으나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사이, 이주 청소년들의 꿈은 좌초되고 있다. 한국에서 이들은 태극 마크를 달 수도, 직업 스포츠인이 될 수도 없다.
참가 자격을 확대할 수는 없을까. 대한체육회의 중론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질의해 지난달 대한체육회로부터 받은 답변서를 보면 전국 17개 시·도체육회와 49개 회원종목단체를 대상으로 한 의견수렴 결과가 나와 있다.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외국인 선수의 참가를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안건에 총 32개 단체가 응답했고, 이 가운데 21곳이 반대, 11곳이 찬성 의견을 냈다. 과반인 65.6%가 참가 자격의 국적 제한을 허무는 데 반대하고 있다.
반대 명분은 △대회 목적에 반함 △국내 선수 역차별 △악용 우려 등이다. 세종시체육회는 “100년 넘게 이어온 전국체전 역사에 비춰볼 때 쉽게 허용할 수 없다”며 “참가를 허용할 경우 각 지역의 무분별한 외국인 영입 경쟁이 벌어져 대회 취지에 반할 수 있다”고 적었다. 전통성과 경쟁 생태계를 해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한검도회는 “전국체전 성적은 학생 선수는 상급 학교 진학, 실업팀 선수는 재계약 연봉에 반영된다”고 썼다. ‘국내 선수’들이 받을 입시·생계의 타격에 대한 우려다.
반면, 찬성하는 쪽에서는 학생도 선수도 줄어드는 현실을 말한다. 외국인 선수 참가 허용 입장을 밝힌 11개 단체 대부분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와 선수 수급 어려움”을 이유로 들고 있다. 대한씨름협회의 경우 “일정 기간 대한민국 정규학교의 학적을 유지하고 있다면 대회에 참가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을 폈고, 대한에어로빅힙합협회는 이미 “종목별 전국대회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 참가를 허용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3월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에 출전했던 한국계 미국인 메이저리거 토미 현수 에드먼. 연합뉴스
이러한 반응은 이주 시대에 제도권 체육계가 맞닥뜨린 현실을 보여준다. 영국 러프버러대에서 스포츠사회학을 연구하는 탁민혁 교수는 “이주 아동이 좋은 운동 신경을 앞세워 특정 종목을 전부 장악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마나 과학에 근거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초기에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결국 수많은 재목 중 하나로 정착할 것”이라고 짚었다. 아울러 “경쟁적 선수 육성이나 스카우트 문제는 경계해야 하지만, 그 역시 이주 아동들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탁 교수는 “현재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합이 곧 한국적인 것이지, 한국적인 것을 따로 정해 놓고 거기에 맞는 이와 맞지 않는 이를 가르는 건 폐쇄적인 태도다. 전국체전이 정말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전통으로 이어지려면 오늘날 실제 한국인들의 구성을 반영해야 한다. 아울러 앞으로 한국이 나아갈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논의가 ‘보편적 인권에 기반을 둔 포용 요구’와 ‘자기 이해를 고수하는 보수적 체육계’의 대립 구도로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국가와 스포츠의 경계를 동일시하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스포츠 산업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고 인식 수준만 탓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스포츠계 내부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줄어드는 인구와 엘리트 풀 수축으로 선수 수급이 다급한 지역이나 종목은 오히려 생존을 위해 개방된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서구의 ‘다문화’도 인권 인식이 선행돼 열린 세상이라기보다는 자본의 필요 때문에 먼저 다양화된 세상을 살아가고자 성립된 윤리에 가깝지 않나.”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얻은 라건아(오른쪽)가 지난해 6월 필리핀과 남자농구 평가전을 뛰고 있다. 연합뉴스
개방 압력은 도덕이나 윤리보다도 사회와 산업의 변화에서 비롯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야구·축구계에서는 조금 더 진전된 논의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축구 선수 풍기 사무엘(22)은 2007년 가족을 따라 앙골라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한국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2021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을 뿐 아직 귀화 절차를 마무리 짓지 못한 사무엘은 프로 세계에서 ‘외국인 선수’일 뿐이었다. 어린 유망주가 프로 구단의 한정된 외국인 선수 자리를 꿰차기는 쉽지 않았고, 사무엘은 결국 팀을 떠났다. K3리그의 파주시민축구단을 거쳐 현재는 소속 없이 개인 운동 중이다.
사무엘의 사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홈그론(Homegrown, 토착의) 제도’를 떠올리게 한다. 2010년부터 시행된 홈그론 제도는 구단 엔트리 25명 중 8명을 ‘21살이 되기 전에 잉글랜드나 웨일스의 구단에서 3년 이상 몸담은 경력이 있는 선수’로 채우도록 한 의무 규정이다. 자국 선수 보호 취지가 목적인데, 위 조건을 충족하면 국적과 무관하게 누구나 리그 육성 선수로 인정받을 수 있다. 과거 아스널의 세스크 파브레가스(스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폴 포그바(프랑스)가 모두 홈그론 선수였다.
십대 시절 대만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국적을 취득한 농구 선수 진안. 지난 1월 여자프로농구(WKBL) 올스타전에서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연합뉴스
한국도 변화가 인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해 외국인 선수 관련 규약에 새 조항을 만들어 한국에서 중학교 이상 재학하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등록선수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이는 국내 선수로 취급하도록 했다. 일종의 ‘KBO판 홈그론’이다. 한국야구위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국적 차별, 취업 차별에 대해서 선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규약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계속 점검하고 있다”며 “(이 규정을 통한 이주민 선수들의 유입이야말로) 앞으로 바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축구 K리그는 기존 제도들과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우리도 2년 전부터 논의를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프로팀 산하 유스클럽 소속으로 있던 선수를 우대하는 우선지명제도라는 게 있는데, 같은 조건으로 육성된 외국인 선수는 외국인 쿼터 예외로 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올 시즌부터 외국인 쿼터 제한이 최대 6명까지 늘어나면서 기존 ‘국내 선수’ 출전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일단 논의를 중지했다”며 “계속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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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