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한 시민이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소득이 전혀 없었어요. 일하다가 갑자기 어느 시점에 건강도 안 좋아지고…그래서 다음 대책이 없었어요. 할 수 없이 조기연금을 수령했고요. 그냥 그거 가지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61·강아무개씨, 여성)
“(한 달에) 1만 몇천원 차이가 나더라고요. 제가 애들만 있고, 집사람이 없어요. 1만 몇천원 더 받는 것보다 그다음에 2년, 3년 후에 받는 거 계산해 보니까 (내 경우는) 바로 신청하는 게 이익이더라고요.” (61·배아무개씨, 남성)
국민연금연구원 조사에 응한 국민연금 조기 수령자들의 ‘이유 있는 답변’이다. 이 연구원의 김혜진 부연구위원이 지난해 7월 조기노령연금 수급자(33명)를 대상으로 벌인 인터뷰의 일부이다.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 10년이 넘고 일정 기준의 소득(3년간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월액, A값, 2023년 기준 286만1091원) 이하면 법상 수급 연령(올해는 63살, 2033년부터 65살)보다 최대 5년을 앞당겨 조기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조사 결과, 이들이 국민연금을 조기에 받게 된 이유는 대체로 서너 가지로 압축됐다. 하나는 실직이나 사업실패, 건강악화 등으로 인해 최소한의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여유 있게 생활하고 싶거나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나름의 판단에서다. 강씨가 전자의 경우고, 배씨가 후자의 경우다.
이들과 달리 연금이 고갈돼 못 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작용한 경우도 있다. 김아무개(63)씨는 “나중에 국민연금이 고갈된다고, 일찍 빨리 하는 것도…남의 손에 있는 것은 내 돈이 아니고, 내가 먼저 갖고 있어야 내 돈이죠”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잃을 걱정에 일부러 금액을 적게 받는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2022년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가 개편되면서 국민연금을 포함한 5대 공적연금 소득 기준이 34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강화됐다. 이 때문에 세전 연금 수령액이 연 2천만원이 넘거나 각종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이 연 2천만원을 넘으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돼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자료: 국민연금연구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이유는 다르지만, 국민연금을 지급 개시일보다 앞당겨 받는 조기노령연금 수급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전국 지사에는 조기 노령연금 신청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6일 국민연금공단의 집계를 보면, 수급 연령(올해 63살)에 이르기 전 연금을 신청한 조기 수급자는 지난 2월 기준 77만7954명으로 집계됐다. 전달(76만4281명)보다 1만3673명(1.8%) 늘었다. 연도별 추이를 보면, 1999년 말 기준 2만6천명이던 조기노령연금 수급자는 2011년 24만6659명으로 껑충 뛰었다. 2021년 말에는 처음으로 70만을 넘어 71만4367명으로 나타났다.
조기노령연금 수급자는 향후 지속해서 늘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말에는 80.6만명, 2026년에는 97.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지출 금액도 2023년엔 약 6조483억원, 2026년에는 8조1천198억원으로 예상된다.
김 부연구위원을 비롯한 연금 전문가들은 조기노령연금 수급자가 느는 것에 대체로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연금액이 애초 정해진 지급 개시연령 때보다 주는 데다, 감액된 연금액으로 사망 때까지 받게 돼 노후소득보장이란 연금제도 본래의 취지가 약화하는 점 때문이다.
조기노령연금은 1년 당겨 받을 때마다 6%, 한 달 당겨 받을 때는 0.5% 감액된다. 연구진 분석을 보면, 월평균 268만원 벌이에 20년 가입한 65살 가입자의 경우, 정상 수급 때는 최초 받는 월 연금액수가 54만원인데, 1년 앞당겨 받으면 51만원으로, 5년 앞당겨 받으면 38만원으로 줄어든다. 이를 20년 동안 받는다고 가정하고 생애 총급여액으로 따져보면, 65살 정상 수급 때 1억985만원이던 연금 총액은 1년 앞당길 경우 2.1% 감액된 1억750만원, 5년 앞당기면 16.2% 감액된 9210만원으로 추산됐다.
자료: 국민연금연구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23년 말 조기노령연금 수급자의 월평균 연금액은 64만1921원으로 추산된다. 2021년 말에는 평균 58만3984원이었다. 실상 전체 조기노령연금 수급자 중 가장 많은 비중(35.9%)을 차지하는 이들의 연금액은 20만원~40만원에 불과하다. 그다음(23.9%)이 40만원~60만원이다.
조기노령연금 수급자가 늘어나는 현상이 문제가 되는 다른 이유는 소득이 낮은 이일수록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민연금 수급자 사이에 양극화를 부른다는 점이다.
김혜진 부연구위원은 최근 펴낸 ‘조기노령연금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조기노령연금 신청 요건인 현행 최소가입 기간 10년을 15년이나 20년으로 늘릴 것을 권고했다. 조기노령연금 신청을 억제하기 위한 조처다. 더불어 연금을 신청할 수 있는 소득 요건도 더 낮출 것을 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소득 수준에 따라 조기노령연금 지급률을 차등 적용해 지급하는 ‘부분 조기노령연금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