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제36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광야에서>를 함께 부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6·10 민주항쟁이 200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처음으로, ‘6·10 민주항생 기념식’이 정부 참여 없이 열렸다. 기념식을 주최해온 행정안전부는 주관 기관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구호를 내건 행사를 후원했다는 걸 문제 삼았는데, 사업회의 후원 철회 등에도 기념식 불참을 고수해 윤석열 정부가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후진적 인식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거세다. 6·10 민주항쟁은 1987년 6월 군부독재에 맞서 전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상징적인 사건이다.
올해 36주년을 맞은 ‘6·10 민주항쟁 기념식’은 10일 당시 독재타도 농성 투쟁이 벌어진 상징적 장소인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2007년 이후 행안부가 주최하고, 행안부 산하 공공기관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해왔다. 올해 역시 한창섭 행안부 장관 직무대행이 참석해 기념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행안부는 행사 전날인 9일 돌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후원한 진보단체 행사 광고 문구에 ‘윤석열 정권 퇴진’ 문구가 실렸다”며 불참을 통보했다. 해당 단체의 광고 문구가 알려진 뒤인 지난 8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설명자료를 내고 “해당 단체가 협의 없이 대통령 퇴진 요구 등의 정치적 내용을 포함했다. (해당 단체의 2023년 민주화운동 정신계승 협력사업) 공모 선정 취소를 통보했고 지원금도 집행하지 않겠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행안부가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기념식은 ‘주최자 없는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정부의 기념식 불참은 보수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없던 일이다. 게다가 출범 이후 수차례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가 실무 단체의 공모 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민주화운동의 가장 상징적인 기념식에 불참하면서, 그동안 발언의 진정성마저 의심스럽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은 “한국 사회가 이뤄온 민주화운동의 성취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으로, 윤 대통령이 평소 외치는 ‘자유’란 가치가 얼마나 선택적인지 잘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윤 대통령은 보수정권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2년 연속 잇따라 참여했는데 그 진정성마저 의심스럽다”며 “광주 정신을 되새기려는 게 아니라, 그저 표를 의식한 정책의 일환이었던 듯싶다”고 했다.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사학과) 역시 “정권 비판을 빌미로 법률로 정한 기념일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 민주정권이 아니라고 자인한 것”이라며 “국민 대다수가 공유하는 민주적 가치를 무시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쪽의 비판도 거셌다. 장신환 5·18민주화운동 서울기념사업회장은 “국가기념일에 정부가 이렇게 유치하고 옹졸한 태도를 보여 적잖이 당황했다”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추가로 특별감사도 예고했는데, 감정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동건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정부 지원금을 받고 정권 퇴진 목소리를 낸 것은 적절한 구호는 아니었을 수 있으나, 왜 그런 목소리가 나왔는지를 되돌아보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박래군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 역시 “국가기념일 참석은 정부의 임무다. 불참 이유도 납득되지 않지만 만약 후원이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건 기념식 불참과는 별도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6·10 민주항쟁은 현행 헌법 체제에서 이야기하는 민주 질서의 기본적인 가치를 이루는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현행 헌법 체제에 기반을 두고 출범한 현 정부라면 당연히 6·10 민주항쟁의 헌법적인 의미를 존중하고 되새겨야 한다. 기념식 불참은 공식적으로 6·10 민주항쟁의 헌법적 의미를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두영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은 “정권 퇴진 구호를 조그맣게 광고에 걸었다고 발끈해 특별감사를 예고하고 기념식에 불참한 건 ‘정부를 비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그럴 시간에 정부가 민생을 위한 정치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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