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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반지하 ‘폭우 참변’ 10개월…물막이판 설치 22%뿐

등록 2023-06-12 05:00수정 2023-06-13 00:23

작년 관악구 일가족 참변 뒤
서울 침수방지시설 설치 더뎌
“집값 하락” 집주인 꺼린 탓도
지난해 40대 자매와 딸 등 세 가족이 숨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 연립주택 반지하는 내부가 철거된 채 1년 가까이 방치돼 있어, 주민들이 임시방편으로 공동현관문 쪽으로 나 있는 창문과 지하 현관문 입구를 나무 판자로 막아놓았다. 윤연정 기자
지난해 40대 자매와 딸 등 세 가족이 숨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 연립주택 반지하는 내부가 철거된 채 1년 가까이 방치돼 있어, 주민들이 임시방편으로 공동현관문 쪽으로 나 있는 창문과 지하 현관문 입구를 나무 판자로 막아놓았다. 윤연정 기자

지난해 8월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관악구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일가족 3명이 반지하에 갇혀 숨진 뒤 10개월이 지났지만, 서울 내 차수판(물막이판) 등 침수방지시설 설치율이 22%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집주인들은 “집값 떨어질까 걱정된다”며 관련 시설 설치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난해 폭우 이후 반지하에서 벗어난 주택 비율이 전체 1.1%에 그친 가운데, 침수방지시설이라는 ‘최소한의 단기 대책’마저 이행되는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서울시 집계를 보면, 지난달 31일 기준 서울 25개구에서 취약가구 거주 및 침수 위험 주택으로 분류돼 물막이판·역류방지기 동시 설치 대상인 1만5291가구 중 실제 설치한 가구는 3416가구로 22.3%에 그쳤다. 역류방지기만 설치한 가구까지 합하면 6310가구로 관련 설치율은 40.2%로 올라가지만, 여전히 설치하지 않은 가구 비율이 더 높다.

침수 피해가 심했던 관악구는 물막이판 등의 설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서울시가 취약층이 사는 침수 위험 주택으로 분류한 관악구 2492가구 중 시설 설치가 완료된 곳은 1365가구(54.8%)로 과반이었다. 다만, 실제 구청에 침수 피해를 알린 가구는 4816가구로 침수 위험 주택은 약 2배 많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침수방지시설 설치율은 28.3%에 그친다. 침수 취약층이 사는 2492가구는 서울시가 지난달까지 조사를 완료한 중증장애인·노인·아동 양육 가구 중심이라, 실제 침수 위험 주택은 숫자가 크게 늘어난다.

곧 닥칠 장마에도 설치율이 30%를 넘기지 못한 데는 일부 집주인이 “집값 떨어질 수 있다”며 시설 설치에 동의하지 않아서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최대한 설치를 권유하고 있으나 설치하면 침수됐던 집이라는 게 드러나기 때문에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이유로 동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작 현실은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한 주민들조차 “물막이판 높이가 반지하 창문보다 낮다”며 침수 걱정을 덜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9일 일가족 3명이 숨진 신림동 연립주택을 찾았지만, 반지하는 철거된 채 여전히 방치돼 있었다. 이곳에 살았던 두 가구 모두 장소를 떠나고 연락이 되지 않자 주민들은 보다 못해 공동현관문 쪽으로 난 창문과 지하 현관문 입구를 나무판자로 막아놓았다.

이 주택 1층에 사는 진원균(56)씨는 “이번에 공동 현관 입구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물막이판을 설치했지만, 또 폭우가 오면 빈 지하 공간에 물이 다시 차버려 무용지물이 될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물막이판을 설치했지만, 45㎝ 남짓한 높이로 반지하 창문이 위치한 것보다 낮아 침수를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침수 피해를 본 관악구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월세로 사는 김아무개(66)씨는 여전히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산다. 김씨는 “1년이 다 돼가는데도 곰팡이는 계속 올라오고, 집은 마르지 않아 장판 아래 깔아둔 신문지를 격주로 갈면서 산다”며 “이사를 갈 처지도 아닌데, 올해 여름이 두렵다”고 말했다.

방 곳곳에는 통풍에 도움이 될까 싶어 벽과 장판 사이에 끼워둔 페트병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집 안에서 반소매 티와 반바지를 입고 목 뒤로 흐르는 땀을 닦은 김씨는 “침수 이후엔 집을 말리기 위해 항상 보일러를 틀어놔 한달에 4만~5만원 나오던 가스요금이 한창때는 10만원도 넘게 나오고 있다”며 “지금도 비가 엄청 내릴 때면 속이 부들부들 떨리고 이번 여름에도 비가 퍼부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뿐”이라고 말했다.

반지하 세입자들은 이주하는 선택지가 최선이지만, 지난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발표한 공공·민간임대 및 이주비 지원 정책으로 반지하에서 벗어난 주민은 서울 내 전체 반지하 주택 약 21만가구 중 1.1%(약 2300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배수로 정비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신림동에서 평생 산 천경국(54)씨는 “지난해 도림천이 범람한 뒤 집 앞 하수구 구멍으로 물이 분수처럼 치솟았는데, 고질적으로 물에 잠기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올해도 피해가 속출할 것 같다. 근본적으로 배수로 정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수해에 취약한 강남역과 광화문, 도림천 등 3곳에 우선적으로 빗물배수터널을 2027년까지 완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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