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 대법관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임명 거부 검토설’이 나오는 등 대통령실의 ‘대법관 인선 개입’이 논란이 된 가운데, 사법부 내부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목소리가 처음으로 나왔다.
수도권의 한 법원에서 근무하는 ㄱ판사는 지난 15일 법원 내부망에 ‘걱정과 참담 사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제청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비판하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ㄱ판사는 “(대법관 후보) 임명거부의 예고는 법에 없는 정치 행위”라며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에 ‘상당한 장애’가 초래된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장 제청과 국회 동의를 받은 후보자라도 임명이 부적절하면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하면 될 일”이라며 “누군가 특정인의 대법관 취임을 못마땅해한다 해도 대법원장이 제청을 못 하게 하는 건 헌법이 정한 바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장에게 책임을 묻기도 했다. 그는 “대법원장은 모두가 지켜보는 공적 영역에서 발생한 장애를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며 “김병로 전 대법원장처럼 ‘제청에 이의 있으면 임명 거부하시오’라고 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임명거부 예고가 최종 선정된 대법관 후보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그는 “행적이 아닌 이념 성향이나 특정 단체 가입 여부에 터 잡은 정파적 공격을 논외로 치면 역시 그만큼 훌륭하신 다른 최종후보자들께도 유감스럽고 누가 될 일”이라며 “어부지리의 혐의도, 외부압력에 의한 피해 의심도 끝내 벗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외부인의 간섭으로 인한 외관상의 장애를 눙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권한을 행사하는 법관의 모습이 국민의 뇌리에 남고 말았다”며 “머잖아 대법관 임명제청을 앞두고 대통령 측의 임명거부 예고가 상시로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고 참담하다”고 밝혔다.
지난 9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서경환 부장판사와 권영준 교수를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 제청했다. 앞서 대법관추천위원회가 대법관 후보를 8명으로 좁힌 뒤 윤 대통령이 ‘이념 성향’을 이유로 특정 후보에 대한 임명 거부를 미리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대법원과 대통령실의 갈등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통령실이 ‘코드 대법관’을 꽂기 위해 임명 절차가 시작되기 전부터 언론플레이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과 함께 대법관후보추천위를 무력화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로 대통령실이 ‘원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후보는 이번 임명제청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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