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왼쪽)가 지난해 11월1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서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임명장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소수자 혐오 발언 등 반인권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상임위원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예방·대비 미흡으로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 대해 “(피해자들이) 몰주의해서 발생한 참사”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이 위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국민의힘 추천으로 인권위 상임위원에 선출된 인물이다.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 인권위원. 인권위 제공
26일 인권위원회는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안’(특별법)과 관련해 의견 표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전원위원회를 열었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을 포함한 7명이 찬성, 2명이 반대(기권 1명) 의견을 냄에 따라, 이날 인권위는 국회에 특별법 심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로 했다. 특히 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피해자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진실을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법률안이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을 조사 개시 결정 후 1년 이내로 정하고 6개월 이내에서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도록 한 내용에 대해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도 했다. 이번 인권위 의견표명은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행정안전부가 인권위 의견 조회를 요청함에 따라 이뤄졌다.
다수의 위원들이 특별법 제정에 동의했지만, 이충상 위원이 부적절한 발언을 쏟아내며 위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이 위원은 이태원 참사를 두고 “피해자들이 몰주의해서 스스로 너무 많이 모였다가 참사가 난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서 참사 발생과 관련해 구조적인 문제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민주당이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당리당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인권단체들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충상 상임위원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곽진산 기자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일원들이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 사퇴 및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국회 앞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이태원 참사와 5·18민주화운동의 가치를 비교하는 발언도 나왔다. 이 위원은 “이태원참사 특별법에는 5·18 특별법보다 훨씬 강력한 조항들이 있다. 스스로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인파 몰렸다가 밀려 넘어져 발생한 사고인 이태원 참사가 국가권력에 의해 시민을 고의 살상한 5·18민주화운동보다 더 귀한 참사냐”라고 했다.
이태원참사 특별법 조사위원 구성을 두고는 “추천위원이 유가족 3분의 1이고, 여당과 야당이 3분의 1이라 유가족과 야당을 합치면 3분의 2를 차지한다”며 “이는 유신헌법 당시 정부 여당이 국회 3분의 2를 차지한 것을 연상시킨다”고도 했다.
이 위원의 반인권적 발언에 다른 위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단순하게 여러 사람이 좁은 데 몰렸다가 자기들끼리 넘어져서 사고 난 거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 때 교통사고 아니냐고 했던 것과 흡사하다”며 “이태원 참사를 두고 5·18보다 더한 사태냐고 하는 주장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서미화 인권위원은 “인권위원의 의견이 어떻게 이렇게 인권 침해적일 수 있냐”며 “5·18희생자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생명을 놓고 비교한 것을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를 방청하던 이태원참사 유가족은 “아이들은 공권력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 죽었다”고 큰 소리로 항의하다 퇴장당하고, 일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후 특별법과 관련해 인권위 의견 표명이 가결되자, 유가족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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