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학원 하나가 의대 입시 좌지우지…최상위권 ‘원서 영역’ 장악

등록 2023-07-12 05:00수정 2023-07-12 15:56

눈치싸움 유리한 정보 구체적 지도…당국 속수무책
‘사교육계 특목고’ 학원이 특정 대학·학과 합격 좌우
 연합뉴스
 연합뉴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우리 학원은 ‘업계 유일 초상위권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ㅅ재수종합학원이 내세우는 홍보 문구다. 이 학원은 최근까지 누리집에 2023학년도 입시에서 전국 39개 의과대학 정시 총정원 941명 가운데 470명(49.9%)이 이 학원 출신이라고 내세웠다. “ㅅ학원 50등이 전국 석차 98등, 학원 100등은 전국 228등”이라고도 했다.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부조리’를 근절하겠다며 그 칼날을 대치동 학원가로 들이대자 해당 글은 내려졌지만, 이 학원을 거쳐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나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도 학원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ㅅ학원을 다니다 서울대에 입학한 ㄱ(20)씨는 “‘이 학원에서 300등 안에 들면 지방 국립대 의대는 간다’고 할 만큼 최상위권이 밀집돼 있다”며 “학원의 대입 실적 또한 뛰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교육 업계에선 ㅅ학원이 단기간에 국내 재수종합반 업계 최강자로 떠오른 것은 이들의 주장처럼 ‘초상위권 학생 생태계’를 구축한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학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문호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 연구원은 “ㅅ학원이 최상위권 학생들의 표본, 특히 의대 진학 희망자들의 표본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원서 영역’ 자체를 거의 장악하고 구체적인 지도를 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서 영역이란 수능 성적표를 받은 상태에서 어느 대학·학과에 원서를 넣으면 합격할지를 놓고 일종의 ‘정보 싸움’, ‘눈치 싸움’을 하는 상황을 일컫는 수험생 은어다.

정시 모집에는 대학별 환산점수가 쓰이는데, 대학마다 수학과 국어, 탐구 반영 비율과 그 방식이 다르다. 예컨대 ㄴ학생과 ㄷ학생의 원점수가 같더라도 대학마다 다른 수능 활용 지표, 과목별 반영 비율, 반영 과목 수, 가산점 등을 환산하면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서도 등수가 크게 달라진다.

의대 진학을 위해 ㅅ학원을 다니는 엔(n)수생 ㄹ(23)씨는 “의대만 해도 전국 39개인데, 내가 어느 대학에 썼을 때 유리하고 불리한지 개인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같은 96점이라도 백분위가 높은지, 표준점수(과목별 난이도를 고려한 조정된 점수)가 높은지 등에 따라 지원 대학이 달라진다. 최상위권으로 가면 갈수록 정보 없인 원서 영역을 치르긴 힘들다”고 말했다.

6월16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6월16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학원생들도 이 학원의 장점으로 이른바 ‘원서 영역’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꼽는다. 실제 이 학원은 최상위권 재수생들이 모여들면서 ‘사교육계 특목·자사고’로 불리는데, 주요 대학·학과의 합격자 규모가 원체 크다. 대규모로 집결한 최상위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개인 성적과 지원 대학·학과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 대학에 지원했을 때 몇 등 정도가 될지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비슷한 점수의 지원자들이 같은 학교에 겹치게 지원하지 않도록 학교 배정까지 해준다. 특정 사설 학원이 최상위권의 정시 전형 합격자들을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장승진 사걱세 정책위원은 “선별된 학생들을 모아 경쟁시킨 뒤 그 집단의 정보를 이용해 학생들이 입시에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하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사설학원 한 곳이 최상위권 대학·학과의 입학 가능 여부까지 쥐고 흔드는 양상이지만, 이를 바로잡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교육부는 지난달 발표한 사교육 경감 대책에서 ‘공공 입시 컨설팅 강화’를 내세웠는데 교육계에선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반응이 나온다.

서울대에 다니다 의대 진학을 위해 다시 반수를 택한 ㄱ씨는 “학교에서는 대규모 실제 표본을 바탕으로, 학생 개개인에 맞춤형 분석을 해주기 어렵지 않겠냐”고 짚었다. ㄹ씨도 “학교에선 체계적인 분석을 해주기보단 하향 지원을 하라고 한다. 정부가 문제 삼을 대상은 사교육 업계가 아니라,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공교육”이라며 “사교육 도움 없이는 산출조차 힘든 대학별 환산점수 방식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사교육 카르텔을 잡겠다며 ㅅ학원을 포함한 대형학원을 향해 날을 벼린다. 하지만, 대학 서열화 등 사교육의 근본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또다른 ㅅ학원들’이 얼마든지 다시 등장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장승진 정책위원은 “ㅅ학원을 찍어 누르더라도 또 다른 학원이 이를 대체할 것”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바람직한 학생 변별의 기준을 정립하는 등 구조적 문제를 개선할 대책까지 논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개별 학교뿐 아니라 각 시도교육청 진학교육지원단 등에도 컨설팅 경험이 많은 교사들이 충분하다”고 선을 그었다. 교육부는 현장교사 중심 무료 대입상담 및 고교-대학 정보공유 확대, 대학별 대입전형 평가기준·평균 합격선 공개 등을 통해 공교육 내 컨설팅을 강화할 계획이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윤정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서울 도심 몰려나온 시민들 ‘퇴진’ 구호 1.

“윤정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서울 도심 몰려나온 시민들 ‘퇴진’ 구호

‘가을 태풍’ 끄라톤 북상중…다음주 한반도 영향 가능성 2.

‘가을 태풍’ 끄라톤 북상중…다음주 한반도 영향 가능성

유승준, 한국행 세번째 거부 당해 “선 넘어도 한참 넘었다” 3.

유승준, 한국행 세번째 거부 당해 “선 넘어도 한참 넘었다”

윤 정부, 체코에 ‘원전 대출’ 카드 내밀었지만… 4.

윤 정부, 체코에 ‘원전 대출’ 카드 내밀었지만…

7살 소아당뇨 환자 ‘응급실 뺑뺑이’…2시간 만에 청주→인천 이송 5.

7살 소아당뇨 환자 ‘응급실 뺑뺑이’…2시간 만에 청주→인천 이송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