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한 취업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현장등록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송파구에 사는 윤아무개(59)씨는 내년 6월 정년을 맞는다. 퇴직과 함께 목돈(퇴직금)을 받지만, 재직 중 중간정산을 했던 데다 은행 대출금까지 있어 퇴직 뒤 손에 쥐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직장생활을 오래 한 터라 노후는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국민연금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국민연금은 퇴직 뒤 3년이 지나야 받는다. 제도상 국민연금은 2023년 기준 만 63살이 돼야 받을 수 있다. 3년의 소득 단절이 불가피하다.
은퇴와 연금 수령 시기 사이 고령자의 소득 단절을 의미하는 ‘은퇴 크레바스’는 추가적인 정년 조정이 없다면 연금지급연령 기준이 65살이 되는 2033년 이후에는 5년까지 늘어난다. 이 기간 소득 단절을 메우고 빈곤 추락을 막기 위한 고령자 고용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의무재고용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7일 <한겨레> 취재 결과, 이승호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조만간 발간할 보고서 ‘한국 고령자 고용대책의 고용 효과’에서 “정년 이후 노령연금 수급까지의 소득단절을 줄이고, 노년기 빈곤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의무재고용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년 이후 일정 연령까지 고용연장 의무를 기업에 부과하는 고령자 계속 고용 방식은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재고용이 있다. 의무재고용제는 바로 정년에 도달한 노동자가 재고용을 희망하기만 하면, 기업이 일정 기간 재고용해야 하는 제도다. 정년 연장은 이견이 많고 이해관계가 복잡해 당장 이루기 힘든 상황에서 고령자 고용 활성화를 위해 우선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이 부연구위원은 의무재고용제는 기업, 노동자, 정부 모두에게 이득을 주는 ‘일석삼조의 제도’라고 설명했다. 즉 기업엔 숙련 노동력을 지속해서 활용할 수 있게 하고, 노동자에겐 정년과 연금 수급 사이의 소득 단절을 메워주며, 정부에도 지출 감소와 세입 증대의 재정 효과를 낳게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그는 의무 재고용 기간을 1년으로 할지, 그 이상으로 할지 등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또 이 제도가 효과를 보기 위해 제도의 영향을 받을 집단, 즉 정규직 정년 퇴직자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만큼, 정년제를 운용하는 기업의 비중도 지속해서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현재 국내에서 정년제를 운용하는 기업은 전체의 21.1%(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 의무재고용제도를 일찍이 도입해 운용하는 대표적인 나라인 일본에서는 전체 기업의 90% 이상이 정년제를 운용한다. 이 부연구위원은 정년제를 운용한 기업에 한해 계속 고용 장려금이나 컨설팅을 지원하거나 고령 노동자의 고용 기간을 연장하는 기업에 인건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여러 지원정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도 적잖은 기업이 고령자를 재고용하지만, 의무는 아니다. 기업이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재량껏 선택해 운용하는 ‘자율적 재고용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중소기업에 한해서는 재고용 때 정부가 계속 고용 장려금을 제공하는 ‘인센티브형 재고용 방식’도 병행된다.
의무재고용제를 포함한 고령자 계속 고용 제도는 지난 2019년 범부처 인구정책티에프(TF)에서 운을 띄운 바 있지만, 당시 경영계가 난색을 보이며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2022년 기획재정부가 인구정책의 하나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중단돼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다.
이창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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