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호 태풍 ‘카눈'이 북상 중인 9일 오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중구 임시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태풍 비상대피 현황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준비 부족으로 파행을 빚은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잼버리)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국가기관·공공기관이 총동원되고 있다. 한국전력과 산업은행 등 공공기관 직원 1천여명이 ‘잼버리 케이팝 콘서트’ 안내요원으로 차출되는 것은 물론 비상 상황에 대기해야 할 경찰·소방 인력까지 스카우트 대원 숙소 관리에 투입되고 있다. 무리한 인력 동원으로 ‘치안·재난대비 공백’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9일 한겨레 취재 결과, 지난 8일 스카우트 대원들의 숙소 이동 관리에만 경찰관 1850명을 비롯해 순찰차 251대와 싸이카 22대, 헬기 4대 등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배치했던 경찰청은 이날도 수도권 중심으로 대원들이 머무는 기숙사 등 숙소 관리 순찰 등에 대규모 인력을 지원했다. 시도청 소속 기동대, 모자라는 경우 일선 경찰서 형사들까지 투입되고 있다.
경찰 내부에선 불만이 나온다. 최근 무차별 범죄 등 치안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잼버리 뒷수습까지 도맡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잼버리 대원들이 머무는 한 대학 기숙사 앞에 동원된 형사는 한겨레에 “강력범죄 이슈도 계속돼서 밤낮으로 동원되고 있다. 낮에는 대원들이 체험 등으로 밖에 나가 숙소엔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형사가 숙소를 지키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온갖 잡일만 맡아서 한다”는 불만이 속출했다. 커뮤니티에는 “잼버리 숙소 인원을 왜 경찰이 한 시간마다 돌면서 파악해야 하느냐”, “숙소 24시간 경비도 선다”, “물 나오는지도 점검하라고 한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태풍 ‘카눈’ 북상을 앞두고 긴장 태세에 돌입한 소방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전날 오후 6시부터 서울 내 13개 숙소마다 소방 공무원을 2명씩 배치했다. 유사시 피난 유도, 화재 진압 등을 위해서다. 특히 11일 폐영식이 열리는 장소엔 소방 인력이 250여명 배치되고 구조대 3개대, 구급대 6개대, 화재진압대 1개대가 투입된다. 전국적으로도 500명 이상 수용하는 숙소 21곳에도 소방 인력이 배치돼 있다.
일선에선 ‘만일의 경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한 소방 관계자는 “안 서도 되는 당직을 한번씩 더 서면서 배치 인력들이 당연히 고생할 수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커뮤니티에도 “소방인데 잼버리 숙소 지킴이 차출됐다. 우리 팀 인력도 없는데 구조대라고 강제 차출됐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소방청은 태풍이 북상하는 등 비상 상황이 예상되는 만큼 현장 출동 인력을 동원하는 건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로 행정 인력을 동원한다는 취지다. 소방청 관계자는 “케이팝 콘서트는 타 시도본부 동원 없이 서울본부 인력만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잼버리와 관련해서는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으로 대응하고, 나머지는 태풍 현장 활동에 집중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도 총동원되고 있다. 잼버리 조직위는 전날 기획재정부에 공공기관 인력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새만금세계잼버리법이 근거다. 잼버리법은 조직위가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에 행정적·재정적인 협조 및 지원 등을 요청할 수 있고, 해당 기관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최대한 협조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총동원령’은 주로 1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열리는 ‘잼버리 케이팝 콘서트’ 때문에 발령됐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학생들이 공연장까지 왔다가 숙소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출발하는 대원들을 인솔할 수 있는, 영어 가능자를 단시간에 구하기 위해 공공기관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담당자는 “조직위가 공공기관별로 직접 요청할 수 없어서 우리에게 부탁했다”며 “지역별로 큰 기관 중심으로 40여개 기관, 1천명 정도 준비 중이다. 출장비, 일당을 지급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한국전력 등 공공기관들은 요청에 따라 인력을 마련 중이다. 공기업에 근무 중인 한 직원은 한겨레에 “다른 때도 아니고 태풍특보도 내려지는 상황에서 급박하게 인원이 차출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며 “자원을 받는다고 해도 공공기관은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자원이 자원일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지원단 간사를 맡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기자설명회에서 케이팝 콘서트 관련 ‘공무원 동원령’에 대한 입장을 묻자 “공무원 동원 부분은 모르겠다”며 “자원봉사자 1천여명을 모집하고 있는 단계로 알고 있고, 특별히 동원된 공무원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실제 마포구청은 이날 녹색어머니회 등 6개 직능단체에 자원봉사자 모집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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