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단체 관계자들과 시설 수용 피해생존자들이 지난 3월14일 오후 서울 중구 퇴계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화숙·재생원 등 수용감금 복지시설에 대한 진실화해위의 직권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시설 인권침해 사건 중 처음으로 1950~1970년대 부산 최대의 부랑인 집단수용시설이었던 영화숙·재생원 사건을 직권조사한다.
10일 한겨레 취재 결과, 지난달 18일 진실화해위 2소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영화숙·재생원 직권조사안은 오는 18일 열릴 60차 전체위원회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지난달 27~28일 부산에서 각각 박형준 부산시장과 손석주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 등 피해생존자들을 만나 직권조사를 기정사실화한 바 있다.
재단법인 영화숙이 운영한 영화숙과 재생원은 인권유린으로 악명 높은 형제복지원(1975~1987)의 박인근(1930~2016) 회장이 모델로 삼은 수용시설이다. 영화숙과 재생원은 1951년과 1962년 부산에서 각각 설립됐다. 부산시의 업무 위탁과 지원으로 덩치를 키워 1960년대 후반 각각 400여명과 800여명을 수용해왔다.
이후 1970년대 초 영화숙 원장 이순영이 폭행·감금·강제수용 및 보조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수용인원들을 다른 시설로 옮기게 되자 1976년 1월 시설 인가가 취소됐다. 재생원에서는 어린아이부터 60대 노인까지 40여명 넘는 이들이 철창이 있는 6평 남짓한 방에 갇혀 감옥 같은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숙·재생원에 수용돼 폭행·감금·강제노역·성폭행·사망 등 각종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수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9일 2년 간에 걸친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신청 마감 결과, 신청인은 7명에 불과했다. 피해자들이 이미 사망 혹은 실종됐거나 지금도 시설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신청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탓이다.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 결성된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는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들을 발굴하며 진실화해위의 직권조사를 촉구해왔다. 직권조사를 진행할 경우 신청인에 구애받지 않고 관련 기관 등에 수용자 명부 등 개인정보가 담긴 자료를 요청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진실화해위는 올해 봄까지만 해도 이미 쌓인 신청 사건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직권조사 요구에 난색을 표명해왔으나, 광범위한 시설 피해자가 있는 현실에서 한 건이라도 직권조사를 해야 마땅하다는 내부 조사관들의 강력한 의지가 동력이 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달 4일 제2소위에서 처음 논의된 직권조사안은 한 차례 의결이 보류된 데 이어, 2주 뒤인 18일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기간이 한정된 만큼 다른 사건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미 폐쇄된 시설과 진상규명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사건 하나를 골라 직권조사하자”는 제안에 기존에 반대했던 위원들도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진실화해위에 신청된 시설 인권침해 사건 25건 중 형제복지원과 부산 덕성원, 충남 천성원, 대구시립 희망원, 서울시립 갱생원, 서울시립 영보자애원도 직권조사 논의 과정에서 후보군에 올랐다.
진실화해위는 현재 진실규명이 가능한 피해생존자가 300명 넘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970년대 영화숙·재생원이 폐쇄된 뒤 305명 가량이 부산 소년의 집으로 옮겨갔는데 최근 소년의 집 운영법인인 마리아수녀회로부터 250여명에 이르는 당시 명부를 입수했다고 한다.
진실화해위는 앞으로 영화숙·재생원의 단속 및 수용과정의 적법성 여부, 의식주 관련 보조금 집행의 문제점 여부, 교육받을 권리의 침해 여부, 구타 및 가혹행위 등 불법행위 여부, 정부와 부산시 및 사하구청 등 관리·감독 관청의 인권침해 묵인·방조·은폐 여부등을 들여다보기 위해 영화숙·재생원 주요 임직원, 관련 공무원, 진실화해위와 부산시에 접수된 사건 피해자 38명 등을 두루 만나 조사할 계획이다.
제2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상훈 상임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시설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 구제 범위를 넓히겠다는 게 이번 직권조사의 가장 큰 취지”라며 “아동 및 성인 노숙인(부랑아·부랑인), 성매매 여성 등 과거 사회에서 외면당한 분들이 국가차원 관리라는 이름 아래 어떻게 다뤄졌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적 대안을 제시할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동 위원장은 지난 7월27일 부산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을 만나 영화숙재생원 직권조사를 위해 부산시 차원의 조사인력 파견을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다음날인 28일에는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소속 피해자들과 면담을 하고 “이변이 없는 한 영화숙·재생원 사건의 직권조사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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