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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욕창과 땀띠의 폭염…목욕 한번에 5시간 돌봄이 깎였다 [영상]

등록 2023-08-22 04:00수정 2023-08-23 01:20

[씻을 권리] 홀로 씻지 못하는 중증장애인
지난달 19일 중증 소아마비 장애인 조효영씨가 머리를 감으려고 욕실로 들어갔다. 전동휠체어는 물에 닿으면 안되기에 직접 몸만 움직여서 욕실로 들어간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달 19일 중증 소아마비 장애인 조효영씨가 머리를 감으려고 욕실로 들어갔다. 전동휠체어는 물에 닿으면 안되기에 직접 몸만 움직여서 욕실로 들어간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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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으려면 우선 기어야 했다. 중증 소아마비 장애인 조효영(52)씨는 평소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 안 이곳저곳을 오가지만, 이곳에 앉아서 샤워를 할 순 없다. 조씨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움직이는 오른손을 이용해 미끄럼을 타듯 조심히 전동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이어 포복을 하듯 두 팔과 어깨 힘으로 75㎏의 체중을 지탱하며 욕실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다른 사람이 무리하게 당기면 바닥에 살이 밀려 상처가 나요. 힘들지만 혼자 하는 게 낫더라고요.” 중간중간 숨이 차오르면 조씨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숙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안방에서 욕실까지, 성인 기준 세걸음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조씨가 욕실까지 도착하는 데는 꼬박 15분이 걸렸다.

■ 휠체어→머리 감기→휠체어… 1시간

지난달 19일 저녁 한겨레는 ‘일일 활동지원사’가 돼 경남 김해시에서 조씨의 머리 감기를 도왔다. 조씨가 고개를 숙인 채 팔 힘으로 바닥을 짚고 ‘버티는’ 사이 재빨리 샴푸질을 했다. 떨어지는 비눗물 아래로 조씨의 팔이 덜덜 떨렸다. 혹여나 조씨의 팔 힘이 풀려 미끄러질까 조바심을 내며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수건으로 간단히 물기를 털어내면 조씨는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해 휠체어로 기어가야 했다. 욕실에서 안방까지 기어간 조씨가 두 눈을 감고 안방 문에 30초간 몸을 기댔다.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다시 휠체어에 앉기까지 걸린 시간은 꼬박 1시간. 욕실에 머문 시간은 10분에 불과했다. “샤워를 해도 휠체어에 타려면 다시 땀을 한바가지 흘리니 욕창과 땀띠가 사라지질 않아요.” 드라이어로 말린 머리카락이 다시 땀으로 축축이 젖어버렸다.

물론 조씨가 땀범벅이 되지 않게 씻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방문목욕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지금은 활동지원사 한명이 조씨의 식사와 외출, 목욕 등을 돕지만, 방문목욕을 신청하면 활동지원사 서너명이 욕조와 목욕용품 등을 구비해 집으로 찾아오거나 이동식 목욕차량에서 목욕을 할 수 있다.

■ 일상지원 5시간 포기해야 가능한 ‘방문목욕’

문제는 돈이다. 정부는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씨처럼 활동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이동 보조, 목욕·간호 등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바우처(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바우처는 중증도에 따라 최대 월 480시간(일평균 최대 16시간)이 제공된다. 일상 활동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 급여 단가는 시간당 1만5570원인 데 반해 방문목욕은 4만6250원~8만2160원이다. 방문목욕 단가가 3~5배 비싼 셈인데, 이 말은 한도가 있는 바우처 시간(조씨의 경우 한달 303시간) 중 장보기와 청소, 빨래, 식사, 외출 준비 등에 소요되는 활동지원 3~5시간과 목욕 1시간을 맞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바우처가 부족한 상황에서 장애인들이 방문목욕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조씨는 “구석구석 제대로 목욕하려면 이동과 목욕을 도와줄 활동지원사 5명은 필요하지만, 제한된 바우처 시간이 부담돼 방문목욕 서비스를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한달에 두번 4시간씩 집 앞까지 찾아오는 이동식 목욕차량 서비스를 이용하는 뇌병변 중증장애인인 강경희(59)씨도 “장애인도 사회생활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씻어야 하는 건 비장애인과 똑같은데, 목욕한다고 바우처 시간을 더 주는 게 아니라서 씻는 것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들은 제대로 씻지 못해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날 때면, 식당이나 대중교통 등을 이용할 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 ‘장애인 목욕탕’은 서울조차 두곳뿐

이따금 대중탕에서 몸을 녹이고픈 생각도 있지만, 장애인들에겐 이조차도 쉽지 않다. 조씨와 강씨가 사는 김해시에는 현재 장애인 전용 목욕탕이 한곳뿐이다. 그조차 성별 구분 없는 목욕 시설이라, 화요일 오전에는 여성, 목요일 오전엔 남성 전용 목욕 공간으로 일주일에 두번만 운영된다.

‘장애인 전용’이라지만 리프트 등 장애인 편의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조씨 같은 중증장애인은 사고 위험을 생각하면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하다. 김해시는 휠체어를 타고 이용이 가능하도록 수납시설과 장애인 전용 목욕의자 등을 갖췄다고 설명하지만, 실제 장애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조씨는 “리프트가 없어 장애인 목욕탕 이용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간혹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을 업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2012년 강원 원주시가 우산동 근로자종합복지관에 지하 조성한 장애인 전용 목욕탕.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연합뉴스
2012년 강원 원주시가 우산동 근로자종합복지관에 지하 조성한 장애인 전용 목욕탕.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연합뉴스

목욕탕에는 청소 등 시설을 관리하는 직원만 있을 뿐 목욕을 지원하는 인력도 없다. 코로나19 이전엔 자원봉사자들이 목욕을 지원했지만, 현재는 인력 부족으로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두 사람의 성별이 다를 경우, 장애인은 홀로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뇌병변 중증장애인 신광대(67)씨는 “활동지원사가 여성이라 목욕탕에 혼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며 “함께 목욕하는 남성 장애인들이 서로 씻는 걸 겨우 도와주는 게 전부”라고 했다. 서울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장애인 목욕탕’은 두곳에 불과하다.

장애인들은 ‘씻는 행위’를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활동지원 시간과 시설 등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지자체에서 기존 목욕탕 몇군데만이라도 지정해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고, 비장애인들이 주말이나 저녁 시간을 이용해 목욕하는 것처럼 최소한 시간제한 없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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