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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판사의 ‘책상머리 판결’…건설노동자에 ‘위험작업 중지 요구 안 한 죄’

등록 2023-08-29 10:00수정 2023-08-29 10:23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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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건설현장에서 ‘작업중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장 노동자에게 동료의 산업재해 사망 책임을 물은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관리자에게 문제제기를 했다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일터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022년 5월 경남 함안군의 한 공사장에서 60대 하청노동자가 굴착기와 담장 사이에 끼여 숨졌다. 여러 작업이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좁은 건설현장에서 굴착기 작업반경 내에 90㎝ 너비 좁은 통행로가 설치된 것이 문제였다. 굴착기가 회전할 경우 너비가 5㎝까지 좁아지는 구조였지만, 충돌 위험을 관리할 ‘건설기계 유도자’는 없었다. 현장소장은 작업계획서와 달리 출입 통제 없이 작업하게 했다.

지난 25일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합의1부(재판장 강지웅)는 이 공사의 원청인 만덕건설의 대표이사 ㄱ씨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ㄱ씨가 “건설기계 유도자를 배치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며 “작업 중지, 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아, 언제든지 협착에 의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급박한 위험에도 안전보건관리 책임자 등이 작업을 중지하거나 즉시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등의 대응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이 사고에서 굴착기를 운전한 ㄴ씨도 이 사건의 ‘공범’으로 인정돼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ㄴ씨에게 “작업할 때 위험한 장소로 작업자들이 통행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건설기계 유도자가 배치돼 있지 않은 경우 작업을 중단하고 공사 관계자에게 유도자 배치를 요구하는 등 굴착기 작업으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었다”고 했다. 검찰이 공소장에 적은 범죄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명시돼 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용자에게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작업중지 등에 관한 체계적인 매뉴얼을 마련할 의무를 부여한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은 ‘그림의 떡’이다. 조은석 건설노조 정책국장은 “굴착기 기사는 법적으로 보호받는 노동자가 아닌 경우가 많고 대체가 쉬운 직역이라 ‘나오지 마세요’라는 관리자의 한마디면 일감을 잃을 정도로 고용이 불안정하다”며 “노조도 아닌 개인이 유도자 배치와 작업 중단을 관리자에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건설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데 작업중지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법원이 유죄 선고한 셈이다.

‘건폭몰이’에 한창인 윤석열 정부는 유명무실한 작업중지권마저도 더욱 형해화하고 있다. 지난 3월 국토교통부는 건설노조의 준법투쟁을 막겠다며 타워크레인, 굴착기 등 건설기계 조종사에 대한 ‘국가기술자격 행정처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급박한 위험 상황이 아님에도 안전수칙의 세부조항 위반 등을 이유로 조종사가 안전관리자 등과 상의 없이 일방적인 판단하에 작업을 전면 거부하는 행위”는 ‘부당한 태업’에 해당해 면허 정지 처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급박한 위험 상황’ 여부가 사용자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박다혜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원청 대표이사 ㄱ씨가 작업중지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아 처벌받은 것을 보면 이 공사장은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현장이었을 것”이라며 “경영책임자가 하지 않은 일을 원청도 아니었던 현장 작업자에게 요구하며 형사책임을 물은 부당한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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