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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가 돌아오지 말걸’…홍범도 평전 펴낸 한 시인의 토로

등록 2023-08-29 18:00수정 2023-08-30 00:58

‘민족의 장군 홍범도’ 표지.  예스24 갈무리
‘민족의 장군 홍범도’ 표지.  예스24 갈무리

‘내가 돌아오지 말걸, 공연히 돌아와서 이 꼴을 보네.’ (이동순 시인의 ‘내가 돌아오지 말걸’ 중)

경술국치 113주년을 맞은 29일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철거하느냐 여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홍범도 장군을 소재로 한 ‘시’들이 공유되며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지난 3월 홍범도의 일생을 담은 평전 ‘민족의 장군 홍범도’(한길사)를 출간했던 이동순 시인(영남대 명예교수)은 지난 14일, 광복절 하루 전날 북토크에서 ‘내가 돌아오지 말걸’이라는 시를 발표했습니다.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봉환된 것과 ‘공연히 돌아와서 이 꼴을 보네’라는 시구가 맞물리며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동순 시인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내가 돌아오지 말걸’이라는 시는 동상 철거 사태가 본격화되기 직전에 쓴 시인데 현재 벌어지는 사태에 너무 부합되는 것 같다”며 “경술국치일인 오늘 많은 분들이 이 시를 공유하면서 애통해했다”고 전했습니다. 40년간 홍범도 장군의 생애와 행적을 연구하고 대하 서사시와 평전을 펴낸 그는 또 “국방부 문서(홍범도 흉상 철거 관련 입장문)를 보니 내용 자체가 너무 왜곡돼 있고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어 기가 막혔다”며 “윤석열 정부가 ‘좌익’ ‘빨갱이’ 등과 같은 색깔론을 내세워 이승만 기념관을 설립하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이런 일들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시인 서해성씨도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동상 암살’이라는 시를 발표했습니다.

누리꾼들은 시인들의 시가 올라온 게시글에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선조들 볼 낯이 없습니다” “구구절절 와 닿는 시네요. 독립운동가분들 뵐 면목이 없는 요즘입니다”라는 댓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내가 돌아오지 말걸
-홍범도 장군의 독백

이동순

내가 돌아오지 말걸

공연히 돌아와서 이 꼴을 보네

내 평생 미워하고 싸웠던

내 아내와 두 아들까지 죽인

저 왜적은 나의 적 우리 겨레의 적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그리 될 수 없는 악독한 승냥이

마시면 바로 병들거나 죽는다는

저 무시무시한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그냥 바다에 쏟아 지구 죽이려는

뻔뻔스런 일본은 교활한 강도

반성도 후회도 모르는 요망한 도깨비 무리

온 겨레가 걱정하며 반대하는데

그 일본 감싸며 두둔하는 놈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말하라 네 조국은 일본인가

을사오적 정미칠적의 씨앗들인가

대답하라 반역의 무리여

친일파를 애국자로 둔갑시키려

국립묘지 기록조차 서둘러 지우고

지나간 100년 전의 일로

일본이 무릎 꿇어 사죄하는 일

더 이상 그만 하자는 놈은 누구인가

가만히 있어도 욕 먹을 종자들이

서로 일본 앞잡이 하려고 안달이 났네

어찌 요 모양 요 꼴인가

나라 따위야 기울어지건 말건

국민들이야 죽건 말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악마의 생각이

이 강토를 병들게 하고 있는데

배제와 배척만 즐기는 무리여

농민을 존중할 줄 모르는 족속이여

한국을 미 일 중 러

4대 강국의 꼭둑각시로 만들고

위안부 지원병 강제징용

그 피해보상을 한국기업이 맡도록

물고를 튼 자는 누구인가

이 무슨 해괴망측한 방식인가

죄는 일본이 지었는데

보상은 어찌 우리 스스로 하는가

처참한 재앙을 불러오는

저 막된 무지와 무능과 굴욕

그간 힘들게 쌓아올린 민주의 진전을

하루아침에 되돌려놓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게 만든

나라를 극한위기로 가득 채우는

그 흉포한 자는 누구인가

노동탄압 길거리 떼죽음

최소한의 반성도 수치도 모르고

국민을 모조리 죄인으로 몰고가는

저 패덕한 자는 누구인가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위기 불러오고

겨레를 몰역사 반민족 비민주로 몰아넣은

저 패덕한 자는 누구인가

정부 여당 언론은

날마다 어명만 받들게 하고

낡은 왕조 썩은 대한제국이 다시

무덤 속에서 꿈틀꿈틀 부활하는구나

국민에 대한 경멸 위에

악당들의 궁전을 세우는구나

점점 야만화 되어가는 한국사회여

민주주의 감각의 완전한 마비여

처벌만이 능사라 외치는 자여

틈만 나면 수갑을 흔들며 겁주는 자여

중하층이 부르짖는 고통의 신음과

겹겹이 쌓인 불안을 못 보는가

내가 돌아오지 말걸

공연히 돌아와서 이 꼴을 보네

오늘은 숫돌에 장검을 들게 갈아

망나니처럼 덩실덩실 칼춤이나 출까나

너희 도깨비 무리를 단칼에 썩 베는

신나는 칼춤이나 출까나

동상 암살

서해성

동상도 암살된다.

광복 뒤 살아서 귀환한 독립군들은 마저 소탕되었다.

조국의 총알로.

나라가 해방되었다고 해서 다 해방되는 건 아니다.

어젯밤 다시 김좌진이 암살된다는 풍문이 돌았다.

지청천이라고도 했다.

저 광복군 총사령관 말이다.

홍범도 옆에 흉상으로 선 연좌죄로 함께 처형될 것이라고 했다.

이범석은 아라사 권총을 들고 싸웠으므로 죄가 되었을까.

아침 아홉 시

이회영이 청동 쇳물로 돌아간다는 소문을 누군가 확인했다.

동상도 암살된다.

죽은 자들을 소탕하라.

동상을 소탕하라.

얼굴 모양을 빚어 생물이 된 죄로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서

다섯 동상이 암살되려 하고 있다.

병사들이 사용한 탄피 5만 발을 녹여서 만든 게 죄였을까.

동상이 암살되는 나라가 있다.

잃어버린 나라를 총칼로 되찾고자 한 건

오래도록 죄였다.

버젓이 지금도 죄다.

동상이 울고 있다.

산 자들을 백주에 암살하던 때가 차라리 나았던 것일까.

죽어서 겨우 살아난 동상들이 암살되고 있다.

독립전쟁 영웅

다섯 동상이 지금 빗속에 울고 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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