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30여년간 소유해온 경북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 1023-11번지 일대, 고추농사가 지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땅 주인은 누군지 몰라요. 경주시 땅일 거라 짐작하고 농사를 짓고 있는데….”
지난 29일 경북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 1023-111번지(190㎡)에서 만난 ㄱ씨는 소일거리로 10년째 이곳에서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ㄱ씨는 오랜 기간 1023-111번지 옆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지만 땅주인을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50평 밭에선 농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밭을 덮은 검정 비닐 사이로 파란 고춧잎과 아직 여물진 않았지만 빨갛게 익은 고추들이 눈에 띄었다. “혹시 여기 근처 주인 좀 알아요? 알면 나한테 알려줘. 이 땅 나라도 사서 쓰면 좋겠구먼.”
수십년간 주인이 알려지지 않은 이 토지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35년 전인 1988년 해군법무관 때 사놓은 땅이다. 서울에서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신경주역에서 내려 꼬불거리는 1차선 도로를 12km 달린 뒤, 논과 논 사이 비포장 흙길을 지나면 망성리 1023-111번지에 닿을 수 있다.
이 후보자가 보유한 또 다른 경주의 2필지 땅 역시 ㄱ씨가 고추농사를 짓는 땅 인근이다. 이 후보자는 만 26살이던 시절 1988년 1023-111번지와 함께 △내남면 용장리 1288-363번지(653㎡) △내남면 망성리 1023-102번지(1만963㎡) 토지를 사들였다.
1023-111번지 땅과 달리 두 땅은 사실상 버려진 상태였다. 차나 사람이 다닌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나무가 무성하고 수풀이 뒤덮여 숲속에 있는 듯했다.
이 후보자는 서울에 거주하며 부산 지역의 ‘농지(답)’를 사들여 관련 법을 위반하고, 이를 되팔아 부인과 함께 수십억원의 차익을 본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동산 투기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법령에 맞게 행동했으며 잘못한 것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과 경주 등 이 후보자가 보유한 땅의 형태를 보면 부동산 투기의 정황은 강해 보인다. 1980년대 후반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던 시기에, 가족 등이 지분을 쪼개 매입했고, 장기 보유 뒤 차익을 얻었거나 특별한 용도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30여년 간 소유해온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1288-363, 1023-102 일대.
이 후보자는 부산 땅에 대해선 “장인의 자동차운전면허학원으로 쓰였다”고 해명하지만, 경주 땅에 대해선 특별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주 땅의 지목은 ‘유지’다. 유지는 댐·저수지·호수이거나, 배수가 잘되지 않지만 연꽃이나 왕골이 자랄 수 있는 곳이다. 농지법 시행령에 따르면, 유지는 농지의 개량시설로 사용될 경우 ‘농지’의 범위에 포함된다. 이 후보자의 땅은 방치돼있지만 농지가 될 가능성이 큰 땅이란 의미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 후보자가 30년 넘게 땅을 팔지도 경작하지도 않은채 장기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한겨레는 지난 29일 이 후보자에게 경북 경주시의 땅의 보유하게 된 경위와 자금 출처 등을 질의했지만, 이 후보자는 이에 대한 답을 보내오지 않았다.
한편,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이 후보자는 이전 재산보다 8억원 늘어난 72억여원을 신고했다. 가족의 비상장주식을 뒤늦게 신고한건데, 이 후보자는 “관련법 변경으로 비상장주식이 재산등록 대상에 포함된다는 걸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 후보자 가족은 3년새 가족의 비상장주식을 통해 1억2690만원의 배당금 수익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글·사진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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