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28일 전국 26개 대학생 1천5백여명이 건국대학교에 모여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발족식을 갖고 농성에 들어가자 6천5백여명의 경찰병력이 소방차, 고가사다리,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강제해산시킨 뒤 학생 1200여명 전원을 연행해갔다. 분신자살을 기도한 학생이 들것에 누워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9일 열린 제61차 전체위원회에서 ‘1986년 10·28 건국대 시위 진압 전후에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과 ‘구로동맹 파업사건’ 등을 포함한 94건에 대해서 조사개시를 결정했다고 31일 밝혔다.
‘1986년 10·28 건국대 시위 진압 전후에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건국대 사건)은 1986년 10월28일 건국대에서 개최된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 결성식부터 3박4일간 지속된 점거농성 당시 경찰의 진압과정과 연행 이후 구속, 석방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 고아무개씨 등 396명(4건)이 진실규명을 신청한 단체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1986년 10월28일부터 31일까지 전국 29개 대학 1525명의 대학생이 연행됐고, 이들 중 대다수인 1200여 명이 검찰에 송치된 사상 최대규모의 구속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의 과잉 진압 사례로 헬기에서 최루탄(SY-44탄)을 난사했다는 의혹과 진압 작전 종료 후 완전히 제압돼 호송되는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인 구타를 가했다는 의혹 등을 검토했다. 그 결과 연행 학생 전원 구속 조치와 관련해 당시 수사 실무 담당자의 회고를 통해 일선에서는 구속수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음에도, ‘정책적 고려’로 전원 구속 수사 방침이 하달된 정황이 드러났다.
특히 사건 당시 관계 당국이 민간인 사찰 계획을 입안해 시행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연행, 구속된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사찰과 ‘순화’교육이 실시됐다. 그 일환으로 남학생은 군에 입대하는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거나 훈방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는 ‘강제징집’ 의혹도 확인돼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1985년 6월 (주)대우어패럴 노조의 임금인상 및 노동권 보장 요구 투쟁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이날 전체위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일어났던 ‘구로동맹 파업사건’에 대해서도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이 사건은 1985년 6월 대우어패럴 노조의 임금인상 및 노동권 보장 요구 투쟁 중 노조위원장과 노조간부들이 구속되자, 같은 달 24일 대우어패럴, 가리봉전자, 부흥사, 선일섬유, 효성물산, 노루표페인트 등 구로공단의 노동조합들이 연대해 벌인 최초의 동맹파업 사건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같은 달 29일 경찰을 동원해 강제해산을 시켰다. 그 결과 44명이 구속되고 38명 불구속되는 등 단일 사건 최대 인원이 입건되고, 약 700여 명이 해고되거나 강제 사직을 당했다.
강아무개 씨 등 신청인 74명(6건)은 민주노조 결성과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회사와 정부로부터 노조 탈퇴와 부서 이동, 사직 강요, 노조 분열과 와해 공작, 일상적 감시와 미행, 감시대상 명단(블랙리스트)으로 인한 재취업 방해 등 부당한 인권침해와 차별을 당했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이밖에도 이날 전체위에서는 ‘충남 천성원 등(4개소) 성인부랑인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과 ‘재일동포 최○○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 ‘제27회 행정고시 시위전력자 면접탈락 사건’,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사건(무진호 등 1972.9.15. 귀환)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개시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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