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기밀 유지가 필요한 수사 등에 써야 하는 특수활동비(특활비)를 공기청정기 렌털이나 기념사진 촬영 등 무관한 곳에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특활비 사용처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부 검찰 고위 간부들이 퇴직 직전에 거액의 특활비를 몰아썼다는 지적도 나왔다. 뉴스타파·경남도민일보·뉴스민·뉴스하다·충청리뷰·부산엠비시 등 6개 독립·공영언론과 세금도둑잡아라·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함께하는 시민 행동 등 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검찰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은 14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56개 고검, 지검, 지청에서 사용한 특활비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광주지검 장흥지청이 ‘검찰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에 제출한 특수활동비 영수증. 하단에 공기청정기 렌털업체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공동취재단 제공
뉴스타파 등 단체로 구성된 ‘검찰예산 검증 공동 취재단’ 관계자들이 14일 오후 대장동 허위 보도 의혹 관련 압수수색 중인 서울 중구 뉴스타파 앞에서 전국 67개 검찰청 특수활동비 예산 검증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타파 등 단체로 구성된 ‘검찰예산 검증 공동 취재단’ 관계자들이 14일 오후 대장동 허위 보도 의혹 관련 압수수색 중인 서울 중구 뉴스타파 앞에서 전국 67개 검찰청 특수활동비 예산 검증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이 확보한 특활비 지출증빙자료를 보면, 광주지검 장흥지청은 검사실 2곳에 설치된 공기청정기 렌털비용 55만8400원을 특수활동비로 썼다. 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찍는 기념촬영 비용도 특활비에서 쓰였다.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써야 하는 특활비를 용처에 맞지 않게 지출한 것이다.
광주지검 장흥지청이 ‘검찰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에 제출한 특수활동비 영수증. 하단에 공기청정기 렌털업체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공동취재단 제공
이런 특활비 사용처는 검찰 쪽 실수로 우연히 드러났다. 검찰은 공동취재단에 영수증과 같은 특활비 지출증빙자료를 제출하면서 사용처를 지웠는데, 일부 자료에서 미처 지우지 못한 부분이 발견된 것이다. 공동취재단은 “일선 검찰청에서 특활비를 쌈짓돈처럼 써왔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라며 “이것이 단지 장흥지청의 사례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흥지청은 당초 공동취재단에 특활비 사용 사실을 시인하고 ‘국고 반납’을 약속했지만 이후 입장을 번복했다고 한다. 공동취재단은 “당시 코로나19 상황이었고, 검사실 2곳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서 공기청정기를 설치한 것으로 특활비 집행 목적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장흥지청이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검찰청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장흥지청이 오집행한 사례가 있어 자체적으로 점검해 집행을 중단했고 오집행된 특활비는 환수 조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활비가 회식비나 격려금 명목으로 쓰이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공동취재단은 특활비 관련 자료를 검찰로부터 수령하는 과정에서 ㄴ지검 관계자로부터 “(특활비를) 보통의 경우 방(검사실) 회식하거나 그런 데에 쓰시죠”, ㄷ지청 관계자로부터 “국·과장님한테 나눠서 격려금 형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다.
일부 검찰 고위 간부들의 경우 퇴직이나 인사 시점에 특활비 사용액이 급증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이 지난 2019년 7월 퇴임을 앞두고 집행한 특활비 지출 내역을 보면, 7월1∼18일 18일 동안 1900만원의 특활비를 쓴 것으로 확인됐다. 송 전 지검장은 7월8일 하루에만 1450만원의 특활비를 썼는데, 17명에게 최소 20만원에서 최대 400만원까지 지급했다.
공동취재단은 “검찰을 떠나기로 결심한 송 전 지검장이 갑자기 기밀 수사에 필요한 특활비를 한꺼번에 몰아 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8년 6월 퇴임한 공상훈 전 인천지검장도 퇴임달에 4179만원의 특활비를 썼는데, 이 중 91%(3826만4000원)가 퇴임을 일주일여 앞두고 지출됐다. 노승권 전 대구지검장도 지난 2018년 고위 간부 인사가 예정돼 있던 달에 3966만원의 특활비를 몰아 썼다.
이에 대해 송 전 지검장과 노 전 지검장의 경우 “검찰에 물어 보라”는 해명을 해왔다고 공동취재단은 전했다. 공 전 지검장은 “특정 기간에 몰아 쓰는 게 아니라 후임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어 퇴임 전에 특활비를 각 부서에 미리 배정해주는 것”이라며 “기관장을 몇차례 했는데 항상 특활비를 넉넉하게 남기는 편”이라고 공동취재단에 설명했다고 한다. 공동취재단은 “나눠줬다는 말 자체가 용도에 맞지 않게 돈을 썼다는 뜻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