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 최아무개씨가 8월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관악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장: “피고인, 피해자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예견하지 못했다는 취지인가요?”
피고인(최윤종): “네.”
재판장: 변호인의 의견도 동조하는 취지인가요?
변호인: 네.
재판장: (재판) 들어오기 전에 피고인과 상의했나요?
변호인: 아니요.
재판장: (구속 중인 피고인) 접견은 가셨나요?
변호인: 아니요.
재판장: 왜 안 가셨나요?
변호인: 구속영장 청구 단계 때 봐서….
재판장: 이 사건은 법정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입니다. 잘 알고 계시죠? 지금 이 사건의 중요성, 엄중함 이런 걸 고려하면 피고인의 방어권은 충분히 보장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변호인이 증거를 열람해야 하고, 피고인 접견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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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한 여성을 때려 숨지게 하고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윤종(30)씨가 첫 재판에서 “(피해자를) 살해할 마음은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의 조사로 최씨가 체중을 실어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지만, 최씨는 “기절시키려고만 했는데 피해자의 저항이 커서…”라며 엉뚱하게 책임을 피해자 쪽에 돌렸다. 결국 살해의 ‘고의성’을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최씨의 국선변호인은 재판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정진아)는 25일 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된 최씨의 첫 공판을 진행했다. 최씨는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공원 둘레길에서 30대 여성 ㄱ씨를 성폭행할 목적으로 금속 재질인 너클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검사가 기소내용 요지를 다 읽자, 최씨는 “전체적으로는 맞는데 세부적으로는 틀렸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장은 “어떤 부분이 다른지 특정할 수 있나”라고 물었고, 최씨가 말끝을 흐리며 정확히 답변하지 못하자 “확실히 살해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냐”고 거듭 묻는 등 정확한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최씨는 “(살해할) 마음을 먹었냐고요? (살해할 마음이) 없었는데 피해자가 저항을 심하게 해서…” “기절만 시키려고 했다”라고 답했다. 재판부는 “살해할 의사는 없었고, (피해자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서 기절시킬 의도였던 것이냐”고 했고, 최씨는 “그러려고 했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이어서 변호인을 향해 질문했다. 앞서 최씨 변호인은 최씨가 살해 고의를 부인한 것과는 달리,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로 의견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최씨 변호인에게 피고인과 접견을 했는지, (사건기록) 열람·복사는 왜 안 했는지 등을 캐물었다. 변호인은 최씨를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한 시점에 접견했었고, 열람·복사 신청은 검찰의 증거신청 뒤에 할 계획이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검찰의 증거신청에 대한) 의견을 주기 전에 (증거신청 목록을) 한번 열람해야 한다. 변호인이 피고인 접견도 해야 한다”며 “적어도 1회 기일 전에 법리적·현실적 쟁점이 무엇이고, (설명을 했어야 한다.) 피고인이 살해의 고의를 부인하는데 변호인이 파악을 안 하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법률적 쟁점과 핵심적 쟁점이 무엇인지 살펴야 하는데 변호인이 하지 않은 것으로 들린다. 적절한 변론이 아니다”라며 “변호인은 변호인 업무를 해야 하는데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변호인 업무와 조금 차이가 있다”고 재판을 끝냈다.
최씨 변호인은 재판 뒤 기자들을 만나 “구속영장 심사 때 피고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관련) 뉴스가 다 보도되고 하는데 상황 변화는 없었다”고 말했다. 구속영장 심사 단계에선 최씨가 살해 고의성을 부인하지 않는 등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어서 추가 접견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자백을 하면 열람·복사를 안 하기도 한다”고도 했다. 사건을 맡은 경위에 대해선 “국선변호사로서 맡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최씨는 재판부가 질문하는 중에도 허공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재판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네?” 하고 거듭 되묻기도 했다. 차고 있는 수갑을 만지작거리거나 의자에 누워 기대고 몸을 흔드는 등 재판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검사가 공소사실을 읽을 때는 일부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기도 했다.
변호인은 검사의 증거신청 목록에 관해 설명해줄 때 빼고는 최씨와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