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심규선 이사장이 지난 7월4일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에서 신임 이사장 임명 과정과 관련된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재단은 본래 이사장 후보를 단수 추천했다가 절차상 이유로 반려되자 추가 공모로 지난해 10월 심규선 전 동아일보 논설실장을 추가 추천했는데, 심 이사장이 당시 지원 서류에 재단을 ‘제3자 변제안’ 실행기관으로 탈바꿈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담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사장 임명 절차가 진행된 시기는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공식화하기 6개월 전으로, 심 이사장이 정부 쪽과 사전 교감을 거친 뒤 지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재단은 2014년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을 위해 출범했으나, 윤석열 정부가 올해 3월 강제동원 해법으로 ‘제3자 병존적 채무인수’(제3자 변제안)를 내놓은 뒤엔 제3자 변제안 실행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9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심 이사장의 자기소개서와 직무수행계획서를 보면, 심 이사장은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유족에 대한 복지 지원 및 학술 연구 중심으로 운영되던 재단을 제3자 변제안을 실행하는 ‘대위변제 기구’로 만드는 구체적인 계획을 적었다.
심 이사장이 지난해 9월 제출한 지원서에는 △정관 목적사업 개정 △포스코의 60억원 기부금 용도 변경 △금전 지급 매뉴얼 작성 등 현재 시행 중인 재단 내 제3자 변제안 실행 방법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심 이사장은 지난해 7~9월 외교부 주관 강제동원민관협의회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민관협의회에선 재단 활용에 대한 언급은 있었으나 상세한 활용 방안까지 제시되진 않은 상태였다. 심 이사장은 민관협의회 활동이 마무리된 직후 이사장 지원서를 제출했다.
행안부 요청으로 ‘재추천’ 과정을 거쳐 심 이사장이 임명된 상황도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의심을 짙게 한다. 재단은 지난해 8월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를 거쳐 김광열 광운대 교수(국제학부)를 이사장 후보로 임명권자인 행안부 장관에게 단수 추천했다. 그러나 행안부는 한달 뒤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에 따라 후보를 복수로 추천해야 한다며 3배수로 후보를 올리라고 요구했고, 재단은 추가 공개모집을 통해 3명을 추천했다. 지침상으로는 사유를 명시하면 단수 추천을 할 수 있고, 과거 전례도 있었다. 이후 행안부는 심 이사장을 최종 임명했다. 당시 재단 이사를 맡았던 ㄱ교수는 “이사들 사이에선 윤 정부와 교감이 있던 다른 인물을 선임하려 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심 이사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부와 사전 교감이 있었다면 추가 공모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공모 서류에도 민관협의회에서 활동하며 강제동원 해법에 대해 주장했던 평상시 생각을 썼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심 이사장의 이사장 지원이 지침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심 이사장은 지난해 9월 재단 이사로 임추위 구성을 위한 이사회에 출석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지침에 따르면 임추위 구성을 위한 이사회 심의·의결에 참여한 임원은 해당 시기 임원 공개모집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 이사장은 “당시 이사회는 이사 선임 후 첫 상견례 자리여서 참가했지만, 심의·의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재단 쪽은 심의·의결한 이사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다.
천준호 의원은 “석연치 않았던 이사장 선임 과정부터 자기소개서 내용까지 심 이사장이 정부와 사전 교감했음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보인다”며 “공모부터 취임까지 모든 과정이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현판제막식. 연합뉴스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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