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입구에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정부 행정전산망 오류로 지난 17일 전국에서 민원서류 발급이 중단되면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질적인 피해가 있었는지, 전산망 오류와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백한지 여부에 따라 손해배상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정부가 관리와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확인돼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네트워크 장비 이상으로 전산망 오류가 발생했다고 밝혔는데, 정부의 관리 잘못으로 오류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
법원은 전산망에 오류가 발생하기 전까지의 과정뿐 아니라 왜 사고 수습 지연이 이뤄졌는지도 살펴볼 가능성이 있다.
행안부는 19일 행정기관 등에서 업무 담당자의 신원과 전자문서의 변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인 ‘행정전자서명’(GPKI) 인증시스템의 일부 네트워크 장비 이상이 전산망 오류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정부 과실이 입증됐다면, 시민들은 구체적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현재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보면, 주민등록등본 등 정부에서 발급하는 서류를 받지 못하면서 전입신고를 못하거나 은행·부동산 거래를 하지 못하는 등의 피해가 많았다.
정부는 주민센터에서 담당하는 납부·신고 민원은 전산 장애가 복구될 때까지 기한을 연장하고, 확정일자 등 접수와 함께 즉시 처리가 필요한 민원은 수기로 접수 받은 뒤 향후 소급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런 대응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었다면 소송을 대비해 관련 자료를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
정부의 과실과 피해자의 피해가 입증된 뒤에는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엄밀히 따져 손해배상 여부를 판단한다. 정부 행정전산망이 중단돼 필요한 민원 서류를 발급받지 못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서류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피해자 입장에선 불리한 조건이 된다.
법적으로 손해는 예견이 가능한 ‘통상손해’와 예견이 어려운 ‘특별손해’로 나뉘는데 피해자의 피해사실이 정부가 예상하기 어려운 특별손해일 경우에도 배상 책임을 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까지 전산망 오류가 발생하면서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성패가 갈렸다. 2017년 11월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의 전산 장애로 시세하락에도 비트코인을 팔지 못해 손해를 입었다며 이용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선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카카오의 서버가 있는 성남시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발생한 ‘카카오 먹통’ 사건에선 소비자가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못해 입은 피해를 인정할 증거와 자료가 부족하다며 재판부가 원고 패소 판결했다.
정부의 행정 서비스 중단에 분노한 일부 시민들이 전산망 오류가 발생한 당일 주민센터에 헛걸음하면서 소요된 시간과 교통비, 정신적 피해 등을 주장하며 소액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엔 실제적인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전산망 오류 발생과 수습 과정에 정부의 책임을 묻는데 의의를 둘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처럼 정부의 책임을 묻는 정치쟁점화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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