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검찰 소환이 임박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로 우산을 받쳐든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이종근기자 root2@hani.co.kr
‘압수수색’ 속전속결-한쪽은 엄두도 못내
삼성 수사 ‘지지부진’ 검찰 내부서도 반발
삼성 수사 ‘지지부진’ 검찰 내부서도 반발
검찰이 재계 서열 2위인 현대차그룹의 비리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하고 있는 반면,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에 대해서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삼성과 현대에 대해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수사를 본격화한 지 3주 만에 정몽구(68) 현대차그룹 회장과 그의 아들 정의선(36) 기아차 사장의 형사처벌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등 현대차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검찰은 정 회장이 2일 미국으로 출국한 직후 그의 아들을 출국금지했고, “수사가 길어지면 나오는 것도 많다”며 정 회장의 귀국을 종용했다. 또 현대차그룹의 ‘심장’이라 불리는 기획총괄본부를 휴일 오전에 기습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변칙증여 등에 대한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는 재수사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이건희(64) 회장 부자의 소환은커녕 삼성그룹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조차 엄두를 못내고 있다.
검찰은 두 사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수사의 양상도 다르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현대차 비리는 최근에 발생한 범죄이고 내부자 제보라는 확실한 단서가 있었던 데 반해, 삼성은 10년 전의 사건인데다 결정적 물증이 없는 고발 사건이기 때문에 수사 성과가 더디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3년 에버랜드 사건을 지휘했던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8일 “에버랜드 사건은 내부 제보도 없는 고발사건이라서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단서를 얻을 가능성이 낮았다”며 “구조조정본부를 한꺼번에 압수수색했다가 헛손질을 하면 검찰에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에 대한 검찰의 지지부진한 수사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검찰 내부에서도 나온다. 특수부 출신의 한 검사는 “에버랜드 임원들의 배임 혐의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은(1심·2005년 10월)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불법성을 입증하는 확실한 단서가 된다”며 “그럼에도 (수사팀이) 확실한 단서가 없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업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이재용씨에게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넘긴 것은 재벌의 경영권 편법승계 방식 중 가장 원시적인 형태”라며 “현대차의 비상장 계열사 지원 수법보다 훨씬 수사하기가 쉽다”고 지적했다. 특수부 출신의 또다른 중견 검사는 “압수수색은 물증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만, 수사 대상을 압박하는 효과도 노리고 하는 것”이라며 “오래된 사건이고 단서를 확보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은 지난해 국가안전기획부 도청녹취록(엑스파일) 사건과 대선자금 채권 수사 때도 검찰의 예봉을 무사히 피했다. “대선 후보 쪽에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당사자들의 대화 녹취록이 있음에도 검찰은 “불법 증거를 수사 단서로 쓸 수 없다”며 삼성 고위 관계자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대선자금 수사 때 행방이 밝혀지지 않은 500억원대의 ‘삼성채권’에 대한 수사에서도 검찰은 무기력했다. 현대차 비리에 대한 수사에서 모처럼 매운 맛을 보여주고 있는 검찰이 삼성 총수 일가의 남은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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