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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성성이 뜬다] ② 암탉이 울면 알을 낳는다

등록 2006-06-16 19:22

지난 2일 아침 서울 서초구 한국스티펠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모여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A href="mailto:chang@hani.co.kr">chang@hani.co.kr</A>
지난 2일 아침 서울 서초구 한국스티펠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모여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아침밥 챙겨주고…야근 못하게 사유서 받고…
여성친화적 경영이 ‘경쟁력’★“하고픈 일 할 수 있어야” / 일터 고르는 ‘1순...
[여성성이 뜬다] ② 암탉이 울면 알을 낳는다

아침밥 챙겨주고…야근 못하게 사유서 받고…여성친화적 경영이 ‘경쟁력’

“기업 경영자들이 마르스(화성)형에서 비너스(금성)형으로 바뀌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리처드 톰킨스는 최근 기업의 조직변화를 이렇게 분석했다. 로마신화에서 마르스는 남성적인 군사의 신, 비너스는 여성적인 미의 신이다. 지식사회라 불리는 미래사회에선 명령·복종·위계 등 무뚝뚝한 ‘남성성’보다 보살핌·개방성·타인의 감정 이해 등 상호존중과 조화를 추구하는 ‘여성성’이 경쟁력이라는 의미다.

여성성의 발현은 남자가 여성화되거나 경영자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을 대립적으로 보자는 것도 아니다. “나를 따르거나 아니면 죽어라!”라는 식의 남성적 방식보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고루 갖춘 리더십이 필요하며, 그렇게 해야 생산성을 높이고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갈수록 다양화·세분화되어가는 우리 사회 흐름에 맞춰 기업들이 달라지고 있다. 그 모습을, 그 분위기를 살짝 맛보자.

밥 챙겨주고 야근 못하게 하고…회사 맞아?=아침 7시30분, 서울 교대역 근처에 자리잡은 한국스티펠 6층 사무실에는 김치찌개 냄새가 가득~. 외국계 제약회사와 김치찌개, 얼핏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손자를 둔 할머니 전문경영인 권선주(58) 사장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1986년부터 이 회사를 이끌어온 권 사장은 직원들을 가족처럼 챙긴다. “처음에는 떡 같은 간단한 먹을거리를 아침으로 주다가 반응이 좋아서 아예 식사를 담당하는 직원을 두고 밥을 합니다.” 권 사장은 ‘밥심’을 믿는 사람이다. 이 회사는 회의 때도 간식을 챙겨주고, 점심값도 전액 지원한다.

권 사장은 직원들의 건강뿐 아니라 가정생활에도 신경을 쓴다.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충실해야 회사생활에도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야근을 하면 야근 사유서를 내게 한다. 윤성인(32)씨는 “야근 사유서를 안 내려면 제시간에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업무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최대한 집중하게 된다”며 “정시에 퇴근하면서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직원 50명 남짓한 이 회사에선 팀 단위에 최대한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심지어 신입사원 인사도 팀장이 면접해 결정한다. 웬만한 사안은 보고도 필요없다. 권 사장은 “사장이 모든 사안에 간섭하는 것보다 직원들에게 일을 맡김으로써 의사결정이 빠르게 되어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국스티펠은 인도와 싱가포르의 스티펠 자회사를 제치고 아시아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의 본사에서도 ‘한국에서만큼은 권 사장 방식대로 하라’고 믿고 맡기고 있고, ‘복지제도가 좋고 분위기가 좋은 회사’로 소문나 신입사원 1명을 뽑는 데 200~300여명이 몰려온다.

직급 호칭 파괴, 자유로운 의사소통…인재가 몰려온다=“시누이가 결혼하면 경조금 나오는데 친정 동생이 결혼하면 왜 돈 한푼 안 나오죠?” 여사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경조금 지급 기준이 ‘시댁 개념’이라고 지적한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리자 회사는 이를 받아들여 제도를 고쳤다. 씨제이에서는 누구나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다. 이 회사에선 사원·과장·부장 등의 호칭을 들을 수 없다. 직급 호칭을 없애고 모두 ‘~님’으로 부른다. 직원 민태중씨는 “호칭을 파괴하니 마음의 부담이 적어져 회의 때 좀 더 쉽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씨제이는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회사다. 잡코리아 등 취업정보 제공업체가 여대생에게 선호하는 회사를 물으면 단연 1위다. 지난해 하반기 공채 때는 여성 신입사원 비율이 50%를 넘었다. 씨제이는 섬세함과 감성이 요구되는 사업군 특성과 함께 상호수평적인 기업문화가 여성 인재를 끌어들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복수합격했음에도 씨제이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해 입사한 권지훈(31)씨는 “다른 대기업에도 합격했지만 틀이 꽉 짜인 기업보다 새로운 분야에서 일할 기회가 많고 또 자율적 기업문화 속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씨제이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씨제이는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이 뛰어들어 별다른 소득을 못 본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도 대기업치고는 이례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매니지먼트’에서 ‘위미니지먼트’로=이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감성경영·펀(Fun)경영·가족친화 경영 등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경영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여성성’에 근거한 것들이 많다. 뼈대는 돌봄·관계지향적·상호수평적 방식이다.

중견 건설회사 우림건설에선 사장이 다달이 10권의 책을 읽고 그중 한 권을 골라 편지와 함께 2천명의 직원들에게 보낸다. 한화그룹은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 직원들을 배려해 그룹 차원에서 자녀 학교를 찾아가 피자를 제공하는 ‘아빠가 쏜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태평양은 영아를 둔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어린이집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기업 경영이 다양화하는 이유로 사회구성원들의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이 다양해지면서 기업문화도 그에 맞춰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여성의 고학력화로 인해 기업 내 여성 인력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여성친화적인 기업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고, 여기에다 여성의 경제력 및 구매결정력이 높아지면서 주 소비자층인 여성의 지갑을 열기 위해 ‘여성’ 또는 ‘여성성’을 이해할 필요가 늘었다는 것이다.

양선아 서수민 기자 anmadang@hani.co.kr


“하고픈 일 할 수 있어야” 일터 고르는 ‘1순위’
‘카리스마 있는 사람’ 인기 적어

“앞으로 10년 뒤면 지금 대리·과장인 여성들이 기업의 임원이 됩니다. 여성이 임원의 절반에 가까워지면 여성적 업무방식을 제대로 업무에 접목하지 못하는 직장인 상당수는 도태될 수 있어요.”

김미경 미래여성연구원 대표는 “미래에 여성성은 기업 생존 문제와 직결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미래’는 이미 진행형이다.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100대 기업의 주주 총수익률을 분석해 봤더니, 여성 관리직 비율이 높은 상위 10% 기업의 주주 총수익률이 27.6%로 여성 관리직 비율 하위 10%인 기업의 20.7%보다 유의미하게 높게 나왔다.

〈한겨레〉와 밀워드브라운이 벌인 설문조사 결과도 이런 점을 뒷받침한다. 여전히 직장은 약육강식의 ‘정글’ 정도로 치부되지만, 직장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일터에서조차 더욱 여성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일터를 고르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에 대해 응답자들은 ‘연봉이 높은 직장’(15.3%)이나 ‘사회적으로 신분을 인정받는 직장’(3.3%)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장’(41.9%), ‘회사 분위기가 즐거운 직장’(6.3%) 등을 많이 꼽았다. 우리 사회의 직장 선택 기준이 더욱 관계 지향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직장 내 이상적인 동료상도 ‘일 잘하는 것’(39.0%) 못지않게 ‘유머있는 사람’(31.8%),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24.0%)이 ‘카리스마 있는 사람’(5.2%)보다 훨씬 인기였다.

한편 ‘직장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는 여성들의 관계 지향성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남성들은 ‘능력에 따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점’(28.5%)을 가장 많이 든 반면, 여성들은 ‘인간관계가 어렵다’(23.5%)가 1위였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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