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이 뜬다] ⑤ 좌담/여성성, 천의 얼굴
‘남성적 경쟁속도’ 벗어나 다양한 가치 공존해야 프랑스 철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본성이 아니라 문화”라고 말했다. ‘여성성’와 ‘남성성’은 시대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가 대안적 가치로 논의하고 있는 ‘여성성’은 어떤 모습일까? 그 안에 담긴 시대적, 사회적 요구는 무엇일까? 1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여성성이 가진 천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조지혜=요즘 많은 사람들이 치유, 소통 등을 여성성 또는 여성적 가치로 분류하면서 눈길을 주고 있다. 예전에는 개인적인 영역에서 사소하게 치부되었던 이런 가치들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이충한=20세기, 근대산업주의 시대에 남성이 수행했던 전쟁과 개발 등은 잘못과 한계가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렇다고 전쟁과 개발을 남성성의 본질로, 평화와 보살핌 등의 가치를 여성성의 본질로 보는 도식엔 문제가 있다. 사회화의 영향도, 그 영역에 대한 여성의 진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당해 온 문제도 있으니까. 김찬호=포악한 남성에게도 사랑이 있고, 부드러운 여성도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다만 남성이 사회 각 부분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면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삶의 모습이나 문화를 남성성이라고,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부에 있었지만 삶을 지탱해 왔던 힘과 가치를 여성성이라고 이름을 매긴 것이다. ‘왜 여성성이냐’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오히려 그 자체로 여성운동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시했을 법한 개념이니까. 김영옥=하지만 메트로섹슈얼, 크로스섹슈얼 같은 말은 남성의 여성적 가치를 돋보이게 해 양성평등 사회가 왔다는 착각을 줄 수 있다. 여성성 강조가 과연 남녀관계 구조에 대한 근본적 성찰인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생산성 향상이나 상업적 가치를 높이려는 것인지를 잘 봐야 한다. 김찬호 소통·창의성이 ‘키워드’로 밀어붙이기식 관계 안통해 김찬호=신자유주의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자유’로운 시장경제는 인간의 잠재력을 다양하게 발굴해내기 때문이다. 요즘 남성들 안에서도 여성성은 강점으로 꼽힌다. 소통, 합리성, 창의성이 키워드로 등장하면서 예전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관계에는 한계가 왔다. 김영옥=요즘 기업들에서 늘 하는 얘기가 “뭐 다른 거 없냐”는 거다. 남성적 관습이 지배적인 조직문화에서 이제까지 창의성은 인정받지 못했으니 이런 변화는 좋은 징후다. 다만 조직 구조 자체가 여전히 남성 중심적으로 남아 있으면서 여성성까지 보너스처럼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문제다. 특히 여성에게는 남성적 조직문화에 대한 적응과 여성성 둘 다를 요구한다. 이충한=여성 상사가 후배를 엄하게 훈육하면서 동시에 따뜻하게 감싸 안는 것은 무척 힘들고, 부하직원도 헷갈리는 일이다. (다들 웃음) 마초적 남성에게 메트로섹슈얼 코드를 적용하면 ‘남성 명품족’이 나올 뿐이다. 남성성을 그대로 둔 채 여성성을 ‘곁들이기만’ 할 때에는 본질이 흐려진다. 조지혜=여성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중잣대는 여전하다. 남성들의 말과 행동에서 여성성을 발견하면 “멋지다”고 해주지만, 여자들이 여성성을 들고 나오면 “너는 왜 그렇게 사니”라고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김영옥=여성성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채택하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강금실이 여성적인 전략을 쓴다고 할 때는 여성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오세훈이 메트로섹슈얼한 이미지를 쓰니까 엄청난 호응을 받지 않았나. 여성성을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평가와 결과가 달라진다. 조지혜=여성성은 가족의 패러다임도 바꾸고 있다. 이른바 성공을 이뤘다는 모험적인 젊은이들을 보면 소위 ‘정상가족’을 이루고 사는 이들이 거의 없다. 김영옥=근대 시기에 여성은 어쩔 수 없이 가족, 사회, 이데올로기를 지키는 구실을 했다. 그런데 지금 소위 ‘비정상 가족’을 이루는 주체가 여성들이다. 구조적으로 약자인 사람이 기존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며 새로운 방식을 채택할 때 사회가 바뀐다. 이제 싱글 여성들은 남편 말고도 함께 살 친구나 동반자를 다양하게 선택하고 있다. 정책 입안자, 국가, 남성이 여성들의 선택에 어떻게 반응할지가 관건이다. 이충한=남성이 ‘정상 가족’을 선택할 수 있는 기초비용도 너무 비싸졌다. ‘마초’라서 내심 아내를 보조자로만 쓰고 싶은 남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 돈 벌면서 ‘한국적 정상 가족’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것은 세습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 말고는 불가능하다.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상’을 흉내 내면서 사는 반동적인 상황도 나오는 것 같다. 이미 전통적 의미의 정상 가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충한 남성성 그대로 놔둔채 여성성 곁들이기만 해서야
조지혜=요즘 많은 20~30대들은 사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삶의 목표가 ‘안정된 생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개인으로서 자유로우면서도 남을 억압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충한=‘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근대 남성은 질문하지 않았다. 경제력의 확보를 삶의 최우선 조건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람들은 남성성의 영역에서 배제되었다. ‘남성적 경쟁의 속도’를 획일적으로 강요하지 말고, 각자 자기 페이스에 맞게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야 한다.
김찬호=남성도 사적인 세계에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삶의 스타일이 허락돼야 한다. 경쟁의 고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생활세계를 어떻게 ‘여성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재건해낼지가 관건이다.
김영옥=정말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차이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서로 배려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 여성성·남성성이라는 이분법적 단어가 사라졌으면 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고착화된 단어들이고 그만큼 억압적이다. 일단 남녀 사이의 평등이 더 많이 이뤄지고 차별도 없어져야 한다.
조지혜 남성도 주류가치 한계 인식 여성성 ‘이중잣대’는 여전
조지혜=여성은 주변부이기 때문에 이제껏 핵심이라 믿어왔던 가치를 외면할 수도, 다른 가치를 발견할 가능성도 많다. 주변부 경험을 한 남성들도 주류 가치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가치들이 유연하게 공존한다면 선택지가 더 많아질 것이다.
이충한=공동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라는 게 예전에는 세계를 구하려는 집단이었는데 지금은 구체적이고 즐거운 관계들의 모임이 됐다. 다만 공동체란 말은 구시대적이다. 젊은 세대들에게 공동체 실험은 “너무 386스럽고” “저건 언젠가 한번 해봤는데 안 됐던 거다”라는 느낌을 준다.
김영옥 차이 배려하는 사회 되면 이분법적 단어 불필요
김찬호=사람들은 점점 감동과 자신의 존재가치를 추구하는데 주변의 비시장적 관계에서는 확인이 안 된다. 그래서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있다. 사소한 경험들이 중요해지고, 친구와의 대화에서 황홀감을 느끼는 일이 중요해졌다. 결국 여성성이 뜨는 까닭은 ‘나’를 넘어서 공동체나 영성과 같은 넓은 바다로 나아가면서 자아를 새롭게 만나려는 움직임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정리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남성적 경쟁속도’ 벗어나 다양한 가치 공존해야 프랑스 철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본성이 아니라 문화”라고 말했다. ‘여성성’와 ‘남성성’은 시대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가 대안적 가치로 논의하고 있는 ‘여성성’은 어떤 모습일까? 그 안에 담긴 시대적, 사회적 요구는 무엇일까? 1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여성성이 가진 천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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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한=20세기, 근대산업주의 시대에 남성이 수행했던 전쟁과 개발 등은 잘못과 한계가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렇다고 전쟁과 개발을 남성성의 본질로, 평화와 보살핌 등의 가치를 여성성의 본질로 보는 도식엔 문제가 있다. 사회화의 영향도, 그 영역에 대한 여성의 진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당해 온 문제도 있으니까. 김찬호=포악한 남성에게도 사랑이 있고, 부드러운 여성도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다만 남성이 사회 각 부분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면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삶의 모습이나 문화를 남성성이라고,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부에 있었지만 삶을 지탱해 왔던 힘과 가치를 여성성이라고 이름을 매긴 것이다. ‘왜 여성성이냐’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오히려 그 자체로 여성운동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시했을 법한 개념이니까. 김영옥=하지만 메트로섹슈얼, 크로스섹슈얼 같은 말은 남성의 여성적 가치를 돋보이게 해 양성평등 사회가 왔다는 착각을 줄 수 있다. 여성성 강조가 과연 남녀관계 구조에 대한 근본적 성찰인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생산성 향상이나 상업적 가치를 높이려는 것인지를 잘 봐야 한다. 김찬호 소통·창의성이 ‘키워드’로 밀어붙이기식 관계 안통해 김찬호=신자유주의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자유’로운 시장경제는 인간의 잠재력을 다양하게 발굴해내기 때문이다. 요즘 남성들 안에서도 여성성은 강점으로 꼽힌다. 소통, 합리성, 창의성이 키워드로 등장하면서 예전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관계에는 한계가 왔다. 김영옥=요즘 기업들에서 늘 하는 얘기가 “뭐 다른 거 없냐”는 거다. 남성적 관습이 지배적인 조직문화에서 이제까지 창의성은 인정받지 못했으니 이런 변화는 좋은 징후다. 다만 조직 구조 자체가 여전히 남성 중심적으로 남아 있으면서 여성성까지 보너스처럼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문제다. 특히 여성에게는 남성적 조직문화에 대한 적응과 여성성 둘 다를 요구한다. 이충한=여성 상사가 후배를 엄하게 훈육하면서 동시에 따뜻하게 감싸 안는 것은 무척 힘들고, 부하직원도 헷갈리는 일이다. (다들 웃음) 마초적 남성에게 메트로섹슈얼 코드를 적용하면 ‘남성 명품족’이 나올 뿐이다. 남성성을 그대로 둔 채 여성성을 ‘곁들이기만’ 할 때에는 본질이 흐려진다. 조지혜=여성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중잣대는 여전하다. 남성들의 말과 행동에서 여성성을 발견하면 “멋지다”고 해주지만, 여자들이 여성성을 들고 나오면 “너는 왜 그렇게 사니”라고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김영옥=여성성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채택하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강금실이 여성적인 전략을 쓴다고 할 때는 여성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오세훈이 메트로섹슈얼한 이미지를 쓰니까 엄청난 호응을 받지 않았나. 여성성을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평가와 결과가 달라진다. 조지혜=여성성은 가족의 패러다임도 바꾸고 있다. 이른바 성공을 이뤘다는 모험적인 젊은이들을 보면 소위 ‘정상가족’을 이루고 사는 이들이 거의 없다. 김영옥=근대 시기에 여성은 어쩔 수 없이 가족, 사회, 이데올로기를 지키는 구실을 했다. 그런데 지금 소위 ‘비정상 가족’을 이루는 주체가 여성들이다. 구조적으로 약자인 사람이 기존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며 새로운 방식을 채택할 때 사회가 바뀐다. 이제 싱글 여성들은 남편 말고도 함께 살 친구나 동반자를 다양하게 선택하고 있다. 정책 입안자, 국가, 남성이 여성들의 선택에 어떻게 반응할지가 관건이다. 이충한=남성이 ‘정상 가족’을 선택할 수 있는 기초비용도 너무 비싸졌다. ‘마초’라서 내심 아내를 보조자로만 쓰고 싶은 남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 돈 벌면서 ‘한국적 정상 가족’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것은 세습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 말고는 불가능하다.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상’을 흉내 내면서 사는 반동적인 상황도 나오는 것 같다. 이미 전통적 의미의 정상 가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충한 남성성 그대로 놔둔채 여성성 곁들이기만 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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