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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성성이 뜬다] ④ 언니와 정치

등록 2006-06-21 18:49수정 2006-06-21 18:53

[여성성이 뜬다] ④ 언니와 정치

‘수평적 리더십’ 신선한 바람몰이

“선거에 그렇게 깨지고도 이렇게 히히덕거리다니, 다들 정신 못 차렸구만.”

지난 1일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 유인태 선대위원장의 말에 참석자들이 까르르 웃는다. 선거 기간에도 “이기고 있는 캠프 같이 즐겁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다.

‘이상한 감격시대’는 선거 전날까지 이어졌다. 세가 불리한 선거 막판, 72시간 유세를 하면서 강 후보 홈페이지엔 지지 댓글 10만개가 달렸다. 그리고 강 후보는 졌다. 하지만 이들은 “멋있게 졌다”고 자평했다. 왜냐고 물으면 “강금실의 리더십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이가 많았다. 정치판에선 보기 드문 수평적 리더십으로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후보는 캠프 사람들의 얘기를 두루 들었다. 그러다 보니 후보가 누구의 얘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구분이 안 됐다. 그러니까 모두의 얘기를 서로 귀담아듣게 됐다.” 정책팀에서 일한 권김현영(30)씨의 말이다.

정치판에 예전과 다른 ‘언니’들이 등장했다. ‘맏언니’ 한명숙 국무총리와 ‘금실 언니’다. 물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추미애 전 의원, 전여옥 의원 등 이들에 앞서 널리 알려진 여성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두 ‘언니’들은 기존의 여성 정치인들과 다른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길 바라는 유권자들의 기대감에 ‘여성성’으로 화답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폭로로 얼룩진 여야 대치 국면에서 한 총리는 인사청문회를 아무 탈 없이 통과했다. 그가 지닌 ‘포용과 화합’의 이미지는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불어닥친 ‘강금실 바람’은 참신함과 개혁 이미지에서 비롯됐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를 지낸 조현옥씨는 “신선함, 깨끗함 등의 가치를 지닌 두 사람에게서 기존 정치와 다른 대안적 모습을 바라는 시대적 열망이 있었고, 이 점이 바로 지지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한다르크’, ‘강다르크’란 말에서 보듯, 선거 참패에 맞닥뜨린 열린우리당은 기존 정치에 신물난 유권자들의 마음을 되찾아 올 ‘구원투수’로서 이런 ‘여성성’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강 후보의 대항마로 여성 친화적이고 깨끗한 이미지를 지닌 오세훈 후보를 전격 영입한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는 “유권자 다수가 여성이고, 여성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는 남성들과 다르다”며 “정치권도 이제는 여성 유권자들을 예전처럼 무시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5·31 지방선거에서 여성한테 비례대표 홀수번을 배정하는 관행이 완전히 뿌리 내리는 단계에 들어선 것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언니’는 기존 정치권 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강 후보 캠프에서 서울시장 선거 전략을 논의할 때다. 캠프에서는 ‘강북과 강남의 대립 전선을 세우고 균열을 일으켜야 한다’는 식의 논의가 주류였다고 한다. 그러나 강 후보는 ‘강남북의 경계 허물기, 하나된 서울’을 강조해 관철시켰다. 캠프에 참여했던 정성호 한양대 교수는 “현실 정치에는 먹혀들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새로운 정치를 만들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강 후보가 내세운 시민주체성, 포용성, 진정성 등의 개념도 정치권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말이다.

강 후보 선대위는 보육·교육·여성정책을 중심 공약으로 설정했다. 여성한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은 것이다. 권김현영씨는 “오랫동안 정치판에 있었던 사람이라도 그동안 여성 후보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캠프 안에 있는 여성들의 말에 굉장히 귀를 기울이게 됐다”고 말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총리실에는 권위와 격식이 사라졌다. 총리 집무실 입구에는 ‘차 심부름’을 줄여주는 셀프 음료수대가 설치됐다. 회의에서도 한 총리는 지시하기보다는 참석자들의 의견을 듣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고 한다. 총리실 관계자는 “이해찬 총리 때와 비교하면 의견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성을 바탕으로 한 정치가 ‘현실화’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한 총리는 ‘여성적 통치’를 보여줄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고, 강 후보는 열린우리당 후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한 채 무참히 패했다. 함 교수는 “조직 문화와 관행이 낯선 정치판에서 이들이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할지는 좀 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유권자들의 향배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달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의 여론조사 결과, 20~30대 여성층에서는 강 후보가 오 후보를 앞질렀다. 40~50대에서는 오 후보가 압도적이었다. 김형준 부소장은 “여성은 여성 후보를 찍지 않는다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이라며 “당당함과 자신감 넘치는 강 후보가 젊은 여성 세대의 ‘역할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지은 최익림 기자 jieuny@hani.co.kr


‘남성적 여성 → 남성으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여성 → 여성적 여성.’

세계 여성 정치 지도자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달 14일 〈워싱턴타임스〉의 분석 결과다.

남성적 여성→여성적 여성
‘남자같은’ 지도자 벗어나 여성지위 향상 애써

‘치마 입은 남자’, ‘명예남성’이라고도 불리는 ‘남성적 여성’의 대표격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다. 그는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답게 남자 같은 이미지로 세계를 호령했다. 그는 ‘세계 여성 지도자 위원회’에 가입해 달라는 요청에 한 번도 응답한 적이 없다고 한다.

1990년대에는 아버지나 남편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여성 지도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인디라 간디 전 인도 총리,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등 주로 아시아권에 몰려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성성’을 앞세워 스스로 권력을 쥐는 여성 정치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독일판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남성 정치판에서 커 온 인물이라면, 미첼렛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전형적인 여성’의 전형이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나라에서 두 번의 이혼을 경험했고 세 아이를 둔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여성적 리더십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국민의 여성’임을 자처했던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도 성공한 여성 리더십의 유형으로 꼽힌다. 90년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에서 43살의 젊은 나이로 대통령에 오른 그는 93%라는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연임을 포기하고 인권운동에 투신하는 등 ‘권력’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세번째 유형의 여성 정치 지도자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지도자가 된 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정치 진출 확대를 위해 애썼다는 것이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각료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했으며, 노르웨이 첫 여성 총리였던 그로 할렘 브룬트란트 총리는 재임 기간에 여성 장관 수를 40% 이상으로 늘렸다고 한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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