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렬 시인이 22일 오후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본 강원도 인제군 덕산리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시인 고형렬씨 ‘인제’ 수해현장에 가다
합강교를 건넜다.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덕산리 안터마을은 초토화하였다. 서울에서 뉴스로 본 수해의 정도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가축 한 마리 없는 덕산리에서 장승고개까지의 13킬로미터는 괴상한, 이해되지 않는 수마(水磨)의 돌지옥. 비구름이 계곡에 내려 돌이 된 것인가.
어이가 없다, 앞이 캄캄하다. 모두 이 한마디다. 김남수(53) 이장은 “수해가 날 수 없는 곳에 물난리가 났으니 천재”라고 말하면서 여운을 남긴다. 원인 파악보다는 살아남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는데 피할 겨를이 없었소. 밤에 그랬더라면 덕산리 사람들은 다 죽었을 겁니다.”
수마로 실종된 동생을 아직 찾지 못한 이영창(53)씨는 악몽을 기억했다.
“아무래도 못 찾을 것 같아요, 이 돌바닥에서 어떻게 찾겠습니까.” 절망적인 말이었다.
“그런 광경은 처음 봤어요. 글쎄 수백 그루 나무들이 공중 선 채로 마을로 다가오더라고요. 처음엔 저게 뭐지? 하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뿌연 빗발 속에서 한아름 되는 나무들이 정말 서서 마을로 걸어오는 것이었어요. 기겁을 하고 핸드폰만 들고 소리치며 산으로 뛰었죠.”
무너진 정미소 주변에 껍질이 벗겨진 거대한 나무 둥치들이 널브러져 있다. 가옥이 전파된 집주인 박일환(50)씨는 혀를 찼다. “말 마시오. 이것들이 20리 산속에서 온 겁니다.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한번 딱 하더니 천지가 변했습니다. 벽돌공장과 경운기가 물에 들려서 그대로 푸들거리며 굴러 내려왔어요.”
들지옥이다…길이고 밭이고 바위들 가득
“나무들이 선채로 마을로 걸어내려왔어”
“아파트만한 산더미들 뒤에 줄서서 내려오고”
전봇대만한 나무들이 서서 내려오고 그 위에 돌과 물이 가득 채워져서 굴러 내려온다? 그게 괴물의 형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난 그게 처음에 뭔지 몰랐습니다. 아파트만한 산더미들이 뒤에 차례로 줄을 서서 내려오는 게 보였어요. 본능적으로 내뛰었죠. 나중에 보니 내가 밤나무 위에 올라가 있더라구요.” 척추장애인 아랑이 엄마(50)도 밤나무로 올라가 살았다고 한다. “지금 무엇이 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살아 있는 것만이 다행이었다. 그는 “집을 빨리 새로 짓는 것이 꿈”이라고 이를 악다물면서 농부다운 삶의 의욕을 보여주었다. 3시께 장승고개(1119m)를 넘어 가리산리로 향하면서 본 수많은 골짜기는 그야말로 위험천만의 형세를 하고 있었다. 가파른 골짜기의 어두운 경사면이 무섭다. 바로 재앙이 온 골짜기들이다. 그런데 산 밑에 그대로 집을 짓는다면 배산임수에 문외한이라도 왠지 안 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8부 능선 위에 위치한 덕적리에서 차로가 막혔다. 원래의 길은 한 곳도 보이지 않고 온통 임시 자갈길이고 물길이고 바윗돌뿐이다. “앞산 뒤에 협곡이 있는데 물이 모이면서 하늘로 터져 올라갔다”고 증언한다. 물이 산과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물이 하늘로 튀어올라 앞산을 넘었는지 상상할 수 없다. 해발 700m에서 해일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덕적리에는 봉사단체 ‘나무사랑’ 사람들이 찾아와 파손된 이원범(70) 노인의 길갓집을 안팎으로 배선을 하고 벽·천장을 수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벼락 한번 딱 하더니 천지가 변했다
이젠 바람만 불어도 가슴이 철렁
절망에 목이 멘다
“수해지라 외면말고 많이 찾아주소”
계곡을 넘어 도착한 가리산리는 적막했다. 오늘 한 주검을 발굴했다.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가 시퍼런 녹음 속에 승천한다. 안가리산 5반에서만 7명이 사망했다. 그중엔 남진현 화백도 있다. 그의 집에서 일박하며 머루주를 마신 것은 2년 전이었다. 사람이 죽은 마을을 이대로 찾아가도 되는 건가. 가리산리 4반 한 집 마당에서 젊은이들이 캔맥주를 하나씩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날 아침처럼 공포에 질린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고 막 돌아올 때였어요. 물이 공중으로 뿌옇게 갈라치면서 미친 소리를 내고 달려 내려오는데, 죽음이 임박했다는 살기를 느꼈죠. 좁은 계곡물에 집이 둥둥 떠서 내려오는 게 보였습니다.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춘천농고를 나와 가리산에 들어와 뿌리내리던 김근수(44)씨. 연락이 어제까지도 안 되자 동창 넷이 찾아왔다. 원주 손부영, 춘천 우명수, 평택 이병목씨. 그는 비닐하우스 7동과 밭 2천평을 날렸다. 바위들이 들어찬 밭을 보며 복구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낙담한다.
수락석출(水落石出). 물은 다 빠져나가고 돌만 잔득 쌓여 있는 골짜기. 박일환씨의 말이다.
“나무를 많이 솎아내야 합니다. 빗물이 나무뿌리를 파고들면 산사태가 시작돼요. 물이 한 그루의 지반 밑으로 들어가서 뿌리가 뜨면 백 그루가 밀려 내려오죠. 여러 곳이 동시다발로 산이 허물어집니다.” 인제의 빽빽한 수림이 무섭다. 인제 지역의 산은 대개 뿌리 바로 밑이 암반이다. 산림을 뇌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잣나무 뿌리가 특히 약하다.
덕산리로 오지의 재난지역 긴급복구 차량들이 끊이지 않고 줄을 이어 나오고 있다. 내일 다시 들어갈 차량들이다. 인제군 사택에서 일주일째 숙식한다는 박씨는 어둑한 골짜기가 아무래도 불안한 모양이다. “덕산리 안에 석정골, 광치골, 절골, 붉은배골, 연애골 등 숱한 골이 있는데 그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조사해야 한다”고 걱정이 태산 같다.
저물고 있는 덕산리. 폭우는 가고 없지만 산바람만 불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한반도에선 매년 국부적 대폭우를 각오하고 대비해야 할 것 같다. 덕산리 이장은 사력댐 설치를 귀띔한다. 작은 골짜기에 설치하는 작은 물막이로 수량을 조절하는 간이 홍수방지 시설인데 과연 초자연의 위력을 지닌 재앙적 폭우 앞에 그게 조절기능을 제대로 할까.
밤의 산개구리 울음소리가 높다. 날이 들려는 걸까. 왜 설악산 근처 내 고향 일대에 화마와 수마의 재앙이 끊이지 않는 걸까. “수해지역이라고 외면하지 말고 많이 찾아주기 바란다”는 한 주민의 목 멘 부탁의 말 뒤에 “중장비를 보내달라”는 하소연이 들려왔다.
빗물과 나무, 돌이 한몸이 되어 춤을 추며 내려오더란 말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인제/글 고형렬(시인·계간 <시평> 주간),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나무들이 선채로 마을로 걸어내려왔어”
“아파트만한 산더미들 뒤에 줄서서 내려오고”
22일 오후 복구작업을 하다 잠시 쉬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 덕산리 주민들의 표정에 깊은 시름이 배어 있다. 인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전봇대만한 나무들이 서서 내려오고 그 위에 돌과 물이 가득 채워져서 굴러 내려온다? 그게 괴물의 형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난 그게 처음에 뭔지 몰랐습니다. 아파트만한 산더미들이 뒤에 차례로 줄을 서서 내려오는 게 보였어요. 본능적으로 내뛰었죠. 나중에 보니 내가 밤나무 위에 올라가 있더라구요.” 척추장애인 아랑이 엄마(50)도 밤나무로 올라가 살았다고 한다. “지금 무엇이 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살아 있는 것만이 다행이었다. 그는 “집을 빨리 새로 짓는 것이 꿈”이라고 이를 악다물면서 농부다운 삶의 의욕을 보여주었다. 3시께 장승고개(1119m)를 넘어 가리산리로 향하면서 본 수많은 골짜기는 그야말로 위험천만의 형세를 하고 있었다. 가파른 골짜기의 어두운 경사면이 무섭다. 바로 재앙이 온 골짜기들이다. 그런데 산 밑에 그대로 집을 짓는다면 배산임수에 문외한이라도 왠지 안 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8부 능선 위에 위치한 덕적리에서 차로가 막혔다. 원래의 길은 한 곳도 보이지 않고 온통 임시 자갈길이고 물길이고 바윗돌뿐이다. “앞산 뒤에 협곡이 있는데 물이 모이면서 하늘로 터져 올라갔다”고 증언한다. 물이 산과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물이 하늘로 튀어올라 앞산을 넘었는지 상상할 수 없다. 해발 700m에서 해일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덕적리에는 봉사단체 ‘나무사랑’ 사람들이 찾아와 파손된 이원범(70) 노인의 길갓집을 안팎으로 배선을 하고 벽·천장을 수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벼락 한번 딱 하더니 천지가 변했다
이젠 바람만 불어도 가슴이 철렁
절망에 목이 멘다
“수해지라 외면말고 많이 찾아주소”
집중호우로 떠내려온 나무에 폐허가 된 강원도 인제군 한계3리 한 주택이 23일 지붕이 날아가 버려 훤히 드러난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있다.
계곡을 넘어 도착한 가리산리는 적막했다. 오늘 한 주검을 발굴했다.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가 시퍼런 녹음 속에 승천한다. 안가리산 5반에서만 7명이 사망했다. 그중엔 남진현 화백도 있다. 그의 집에서 일박하며 머루주를 마신 것은 2년 전이었다. 사람이 죽은 마을을 이대로 찾아가도 되는 건가. 가리산리 4반 한 집 마당에서 젊은이들이 캔맥주를 하나씩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날 아침처럼 공포에 질린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고 막 돌아올 때였어요. 물이 공중으로 뿌옇게 갈라치면서 미친 소리를 내고 달려 내려오는데, 죽음이 임박했다는 살기를 느꼈죠. 좁은 계곡물에 집이 둥둥 떠서 내려오는 게 보였습니다.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춘천농고를 나와 가리산에 들어와 뿌리내리던 김근수(44)씨. 연락이 어제까지도 안 되자 동창 넷이 찾아왔다. 원주 손부영, 춘천 우명수, 평택 이병목씨. 그는 비닐하우스 7동과 밭 2천평을 날렸다. 바위들이 들어찬 밭을 보며 복구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낙담한다.
고향의 폭우 피해 소식을 듣고 안산에서 고향을 찾아 내려온 한 귀향객이 22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가리산리에서 청소도구를 들고 고향집으로 향하고 있다. 인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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