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공식 임기가 시작됐다. 뉴욕 플러싱의 189중학교 한국어반에서 우리말을 배우는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이 유엔본부 앞에 모였다. 미국 토박이인 글렌 스펜서(오른쪽에서 다섯번째), 말레이시아계 림이칭(왼쪽에서 여섯번째) 등 다양한 뿌리를 가지고 뉴욕에서 사는 열두 살 동갑내기 어린이들은, 1년 전부터 교사 이경희(맨 왼쪽)씨한테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아이들은 “한국어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사람, 언어를 만나는 것이 즐겁고 멋있다”며 한국어로 캐럴을 불렀다. 뉴욕/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다시, 새해다. 87년 6월항쟁 20돌이자,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12월19일엔 17대 대통령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여러 모로 겨레의 명운이 갈릴 수 있는 선택의 2007년이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키는 훌쩍 컸지만 20년 전의 낡은 옷에, 비쩍 마른 몸피를 하고 있는 꼴이라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정해구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는 “우리사회가 산업화, 민주화를 건너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친 물결 속으로 편입됐지만 제도와 토대는 20년 전의 틀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좀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면 절차적, 형식적 차원을 넘어 삶속에 녹아든 숙성한 민주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87년 당시 대학 2학년생으로 6·10항쟁을 겪었던 박현희(구일고교 교사)씨는 “우리의 미래 세대가 체화된 민주주의 속에서 진정으로 존중받는 경험을 할 때, 세상은 우리가 꿈꾸던 그 모습에 성큼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제금융 10년이 할퀴고 간 상처를 치유해 우리사회의 바탕을 굳건히 다져내는 일 또한 새해에 빠트릴 수 없는 숙제다. 양극화와 고용불안의 위협 속에 벼랑끝으로 내몰린 서민들의 삶을 보듬어내지 못하면 그동안 닦아낸 민주주의의 기틀조차 흔들릴 수 있는 까닭이다. 외환위기 당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이들의 사연을 담은 ‘눈물의 비디오’를 제작해 반향을 일으켰던 이응준(기업은행 문화홍보실 차장)씨는 “펑펑 눈물을 쏟아내던 여직원들의 좌절한 눈빛이 생생하다.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 우리사회의 약자들에게서도 기쁨과 희망의 눈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거 10년과 20년에 대한 성찰 속에 맞는 올해 대선은 단순히 임기 5년의 대통령 선거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의 미래 10년과 20년의 모습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박찬욱 교수(서울대 정치학)는 “이번 대선은 우리사회가 성장과 통합, 민주주의와 복지를 아우르는 성숙한 선진사회로 접어들 수 있느냐 아니면 정체의 늪속으로 빠져드느냐의 갈림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대선을 우리사회의 뼈대를 다시 짜고 살집을 새로 채우는 전환점으로 삼아, 나아갈 방향과 진로에 대한 국민적 토론의 마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87년에 태어나 올해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이성은(연세대 인문계열)씨는 “서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이런 사회를 만드는 방법을 놓고 경쟁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대선이 분열과 갈등을 낳는 정치세력 사이의 소모적인 싸움이 아니라, 21세기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발전전략을 놓고 지혜를 겨루는 생산적인 자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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