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서울역 앞에서 대통령 직선제 등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맞서 투석전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7년 그뒤 20년] 6월항쟁 열정 곱씹어 새롭게 승화 나설 때
빛바랜 사진을 본다. 사진 속 젊은이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눈을 감은 채 친구의 품에 안겨 있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던 연세대 교정이다. 꼭 20년 전, 서울대생 ‘박종철’의 죽음으로 시작한 1987년은 연세대생 ‘이한열’의 죽음으로 끓어올랐다. 숱한 젊음이 군사독재의 손에 희생되고 고초를 겪었으며, 또 그보다 훨씬 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민주주의라는 희망을 길어올렸다.
20년 뒤, 2007년 새해는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욕설과 증오로 시작하고 있다. 87년 거리를 메웠던 이른바 386세대는 나라를 망친 무능의 대명사로 매도되고 있고, 당시 독재자의 편에 섰던 세력은 20년 동안 구부러진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역설적이게도, 87년과 07년을 표현하는 열쇳말은 모두 ‘혼란’과 ‘갈등’이다. 또 하나의 열쇳말이 87년의 ‘독재’에서 07년의 ‘불평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87년은 독재를 물리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해였고, 민주노조가 출발한 해였고, 시민운동이 발아한 해였다. 20년 뒤인 지금 저 숱한 87년의 열매는 빛이 바랬다. 이들 두루 제구실을 못한다는 냉소가 퍼져 있다.(5면 여론조사 참조) 피 흘려 지키고자 했던 민주와 민중의 가치, 그 타오르던 정신은 이제 빛바랜 사진 속에만 남았다.
<한겨레>는 ‘1987년 체제’ 20년을 맞아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려 한다. 민주주의라는 외피는 갖췄으되 진정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지, 민주노조라는 외피는 갖췄으되 노동운동이 노동자로부터 외면받는 연유는 뭔지, 전교조라는 굳건한 교사운동이 자리잡았으되 참교육의 이념은 제자리걸음인 이유가 무엇인지, 시민운동은 화려했으되 시민들 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지 ….
이런 반성을 통해 스무살을 맞은 87년 체제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자 한다. 그 시작으로 한겨레는 87년 당시 청년기를 보낸 35~45살 세대를 대상으로 87년의 의미를 묻는 설문조사를 벌였다. 또 각기 다른 길을 살아온 ‘87년 세대’ 5명의 인생 역정을 있는 그대로 추적해 봤다.(6면 시리즈 기사 참조) 이제 불혹의 나이에 이른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87년의 열매가 현실의 토양 속에서 다시 싹트게 할 조건을 모색하고자 함이다.
나아가 한겨레는 올 해 내내 87년이 낳은 열매들을 부문별로 하나씩 곱씹어볼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저 빛바랜 사진 속 젊은이가 흘린 피를 정성스레 닦아주고 그가 꿈꿨던 진정한 87년 체제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용현 기자 piao@hani.co.kr
20년을 말한다
“6월항쟁은 큰 자부심이다”…“희망 자체가 퇴색했다” “만일 내가 1987년 6월 항쟁을 접하지 않은 채 평범한 사회인이 됐다면 쓸모 없는 인간이 됐을 것이다. 천주교의 사회참여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이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살았다는 것이 큰 자부심이다.” 1987년 당시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사무처장 김지현(53)씨 “1987년만 해도 남영동에 가면 물 먹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거 없다. 그때는 화염병, 각목, 돌 등이 난무했고, 경찰쪽에서도 최루탄을 엄청 많이 썼으니까 다닐 수가 없었다. 시위문화가 지금은 많이 정착이 됐다. 당시에는 무조건 초전박살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집회를 막는 게 우선이었다. 지금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아졌다.” 서울 중부경찰서 정보과 김인규 형사 “20년 동안 강산이 두번 바뀌었다. 그동안 나도 많은 것이 변했다. 정말 싫어했던 한나라당을 이번 대선에선 찍을 수도 있다. 노동조합도 제도권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했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특정집단의 세력화로 비쳐져 순수성이 희미해졌다.” 한 통신회사 부장 오아무개(45)씨 “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저임금 등에 맞섰던 ‘노동해방’ 담론이 우위였지만 이후 제자리 걸음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노동귀족’이라는 역공을 당하고 있다. 노동자들 역시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고 생각도 다양해져 응집력이 많이 떨어졌다.”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지금 386세대라고 흔히 얘기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전면에 나서 역할을 하고 있고, 실제로도 역할을 할 만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활동할 때 가졌던 사고가 사회의 주역이 돼서도 반영이 되는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대학 2~4학년 때 생각이 자꾸 달라졌다. 이런 생각의 혼란은 80년대가 갖는 특징이 아닌가 한다.” 생활협동조합 사무총장 박상신(41)씨 “희망 자체가 퇴색했다. 6월 항쟁이 성공했을 때 엄청난 변화·변혁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까지 너무 많은 실망을 했다. 지금은 희망이 줄어든 만큼 실망도 줄어들었다. 그동안 ‘면역 주사’를 많이 맞은 것 같다.” 국민은행 정아무개(39)씨 이정훈 기자
20년을 말한다
“6월항쟁은 큰 자부심이다”…“희망 자체가 퇴색했다” “만일 내가 1987년 6월 항쟁을 접하지 않은 채 평범한 사회인이 됐다면 쓸모 없는 인간이 됐을 것이다. 천주교의 사회참여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이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살았다는 것이 큰 자부심이다.” 1987년 당시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사무처장 김지현(53)씨 “1987년만 해도 남영동에 가면 물 먹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거 없다. 그때는 화염병, 각목, 돌 등이 난무했고, 경찰쪽에서도 최루탄을 엄청 많이 썼으니까 다닐 수가 없었다. 시위문화가 지금은 많이 정착이 됐다. 당시에는 무조건 초전박살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집회를 막는 게 우선이었다. 지금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아졌다.” 서울 중부경찰서 정보과 김인규 형사 “20년 동안 강산이 두번 바뀌었다. 그동안 나도 많은 것이 변했다. 정말 싫어했던 한나라당을 이번 대선에선 찍을 수도 있다. 노동조합도 제도권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했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특정집단의 세력화로 비쳐져 순수성이 희미해졌다.” 한 통신회사 부장 오아무개(45)씨 “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저임금 등에 맞섰던 ‘노동해방’ 담론이 우위였지만 이후 제자리 걸음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노동귀족’이라는 역공을 당하고 있다. 노동자들 역시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고 생각도 다양해져 응집력이 많이 떨어졌다.”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지금 386세대라고 흔히 얘기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전면에 나서 역할을 하고 있고, 실제로도 역할을 할 만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활동할 때 가졌던 사고가 사회의 주역이 돼서도 반영이 되는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대학 2~4학년 때 생각이 자꾸 달라졌다. 이런 생각의 혼란은 80년대가 갖는 특징이 아닌가 한다.” 생활협동조합 사무총장 박상신(41)씨 “희망 자체가 퇴색했다. 6월 항쟁이 성공했을 때 엄청난 변화·변혁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까지 너무 많은 실망을 했다. 지금은 희망이 줄어든 만큼 실망도 줄어들었다. 그동안 ‘면역 주사’를 많이 맞은 것 같다.” 국민은행 정아무개(39)씨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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