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6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민주화를 외친 함성의 물꼬는 어디에서 터졌을까? 서울 용산구 갈월동 80번지에 자리한 이른바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1976년 치안본부(지금의 경찰청)가 대간첩 수사를 명목으로 만든 이곳에서 실제 벌어진 일은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엄청난 고문이었다. ‘조사실’이 빼곡히 들어찬 5층은 방마다 30㎝ 길이의 자처럼 폭이 좁고 긴 2개의 창문만 나 있어, 비명소리도 새어나오기 힘들었다.
1987년 1월14일, 당시 23살이던 박종철(서울대 언어학과 2년)씨가 경찰의 무자비한 고문 끝에 숨지고, 이런 사실이 한 언론을 통해 보도된 뒤에야 비로소 ‘고문의 산실’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씨가 숨진 509호 조사실에는 지금도 4.09평 공간에 책상과 의자, 침대는 물론 고문에 사용된 ‘욕조와 샤워기’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경찰은 지난 2005년 7월 이곳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바꾼 데 이어, 올해 5억원의 예산을 들여 20~30평 규모의 ‘인권기념관’도 설치할 계획이다. 추모단체들은 오는 14일 열리는 ‘박종철 열사 20주기 추모행사’에서 7층 건물 전체를 검은 천으로 가린 뒤 박씨의 영정을 내려뜨리고, 5층 조사실에 이르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그의 일기와 편지, 사진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전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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