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가리봉동 서울중국인교회에서 이주여성들이 대선 후보들을 향해 자신들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서울중국인교회 제공
아웃사이더에게 대선을 묻다 ① 이주민
9만명 첫 투표권…선거통해 권리찾기 나서
“사회서 차별 받고있는데 후보들마저 냉대”
결혼사기 보호·차별철폐 정책 어디 없나요
“이젠 한국인인 이주여성도 10만명 가까이 됩니다. 후보님들, 저희를 무시하지 마세요.”
11일 오전 서울 가리봉동 서울중국인교회에서 만난 김영화(26)씨가 서툰 우리말이지만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중국 출신인 김씨는 2004년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정착한 뒤 지난 8월 국적을 얻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그가 한국에서 처음 참여하는 선거다. 중국에서 국가 원수를 직접 뽑아본 적이 없는 김씨에게 대선은 선뜻 와닿지 않을 법도 한데, 김씨는 오히려 적극적이다. “저도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왔지만, 결혼 사기로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어요. 무엇보다 이에 대한 보호 대책을 마련하는 후보를 찍을 생각이에요.”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은 1990년 이후 2006년까지 17만여명.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9만여명이 국적을 얻어 이번 선거에 참여한다. 정치적으로 소수자들인 만큼 이들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관심도 적다. <한겨레>는 김씨를 비롯해 박인란(29·중국)·한설(31·중국)·닛마한(24·베트남)·주란다(29·필리핀)씨 등 이주여성 5명이 말하는 ‘2007 대선’에 대해 들어봤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도 주변 사람들과 똑같은 ‘한 표’로 인정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설씨는 “돈 많은 한국인이라고 10표를 찍는 것도 아닌데, 왜 후보들이 우리한테는 소홀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닛마한씨는 “한국에서 살다보면 여전히 적잖은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며 “이를 바로잡을 기회인 선거에서마저 차별을 받고 있으니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운동 기간 동안 대선 후보들은 이주여성 문제를 논의하는 토론회 한 차례 열지 않았다.
대선 후보들의 ‘냉대’에도 이주여성들에게선 선거를 통해 권리를 찾고 자신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열정이 엿보였다. 3년 전 중국에서 온 박인란씨는 “식당에서 똑같이 일하는데도 한국말을 못 한다고 월급을 한국 아줌마들의 절반밖에 안 주더라”며 “이번 선거를 통해 이주여성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경제적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개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주란다씨는 “한국에 온 지 3∼4년이 지나도 국적을 못 얻는 경우가 많다”며 “2년이 지나면 국적을 곧바로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당당하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밝히기도 했다. 한설씨는 “이명박 후보가 10월에 외국인 주부들과 어울려 대화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며 “그런 모임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적 취득 제도에 관심이 많은 주란다씨는 “문국현 후보가 국적 취득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것을 봤다”며 “아무래도 문 후보에게 끌린다”고 말했다. 닛마한씨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정동영 후보한테 끌리지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누가 우리 이주여성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줄지 따진 뒤 선택할래요.”
서울중국인교회에서 이주여성 유권자운동본부를 후원하고 있는 최황규 목사는 “기댈 곳 없는 이주여성들은 남들보다 투표권 행사를 더 소중히 생각한다”며 “이들의 마음을 잡으려면 후보들마다 이주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사회서 차별 받고있는데 후보들마저 냉대”
결혼사기 보호·차별철폐 정책 어디 없나요
아웃사이더에게 대선을 묻다
대통령 후보들의 이주민 지원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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