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항목 전문 클리닉
‘건강권’ 위협하는 의료산업화(상) 비급여 진료 치중하는 병원들
서울시 성형외과 93% 건강보험 청구내역 ‘0’
‘전문화 바람’ 일반 진료는 아예 거부하기도
당연지정제 완화땐 보험환자 기피 심화 지적 서울 서초동에 사는 김아무개(34·주부)씨는 최근 딸을 치료할 성형외과를 찾아 헤매다 분통을 터뜨렸다. 아이가 놀다가 넘어져 이마가 찢어졌는데, 집 근처 성형외과들에서 모조리 치료를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강남역 근처에 널린 게 성형외과인데 다들 ‘예약제’라거나 ‘수술 중’이라며 접수를 받아주지 않았다”며 “미용 성형 전문이란 건 알지만, 아이가 예약해 놓고 다치는 것도 아닌데 정말 난감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건강보험 환자를 거절할 수 없도록 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를 추진하는 등 의료산업화 가속 페달을 밟자, ‘돈 안 되는’ 건강보험 진료를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미용 시술 같은 ‘돈 되는’ 비급여 의료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면서, 의료 분쟁 등 부작용도 늘어나는 추세다. 2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연간 진료비 청구실적 자료를 보면, 서울시내 의원급 성형외과 315곳 가운데 건강보험이 적용된 진료비 청구 내역이 전혀 없는 곳이 93%인 293곳에 이르렀다. 임플란트 등 비급여 시술이 즐비한 치과는, 7.5%인 331곳에서 건강보험 청구가 아예 없었다. 피부과도 건강보험 진료 총액이 연간 5천만원도 안 되는 곳이 30%에 육박하는 등, 비급여 진료에 주력하는 곳이 급증하는 추세다. 건강보험 환자 중심인 내과의 경우 건강보험 진료 총액이 5천만원 이하인 곳은 5.1%에 지나지 않는다.
비급여 의료에 치중하는 의료기관이 늘면서 건강보험 진료가 마뜩잖은 ‘계륵’으로 홀대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미용 시술이 아닌 외상 치료를 위해 성형외과를 찾거나 피부염 치료를 위해 피부과를 찾았다가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다. 김지현(26·판매원)씨는 최근 아말감 치료를 거절하는 의사와 다퉜다. 김씨는 “의사가 ‘아말감은 안 한다’고 했다”며 “아말감의 단점은 알지만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몇 천원이면 되는데 22만원짜리 금을 하라고 밀어붙이니 화가 나더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 등 상업의료가 득세한 지역에 드리워진 ‘의료산업화의 그늘’인 셈이다.
성형·피부·치과 등에서는 진료비의 10∼15%를 인센티브로 챙기는 상담사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의료 소비자들의 피해도 늘고 있다. 고객 유치에만 급급해 시술 효과를 과장하거나 부작용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탓이다. 사금융 업체를 통해 ‘성형 대출’까지 알선해가며 무리한 시술을 부추기는 일도 있다. 강남 성형외과에서 팔자주름 시술 뒤 통증으로 고생만 했다는 김아무개(61·주부)씨는 “무통증에 30분이면 된다는 상담실장 말에 홀려서 590만원짜리 시술을 받았다”며 “카드 결제를 하고 나서야 의사를 만났고 부작용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강주성 대표는 “미용 시술 등 ‘비급여 의료’를 앞세운 의료산업화는 폐해가 적지 않고 지금도 거의 통제를 받고 있지 않다”며 “의료산업화를 빌미로 당연지정제 폐지 등 건강보험의 기본적인 뼈대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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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지정제 완화땐 보험환자 기피 심화 지적 서울 서초동에 사는 김아무개(34·주부)씨는 최근 딸을 치료할 성형외과를 찾아 헤매다 분통을 터뜨렸다. 아이가 놀다가 넘어져 이마가 찢어졌는데, 집 근처 성형외과들에서 모조리 치료를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강남역 근처에 널린 게 성형외과인데 다들 ‘예약제’라거나 ‘수술 중’이라며 접수를 받아주지 않았다”며 “미용 성형 전문이란 건 알지만, 아이가 예약해 놓고 다치는 것도 아닌데 정말 난감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건강보험 환자를 거절할 수 없도록 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를 추진하는 등 의료산업화 가속 페달을 밟자, ‘돈 안 되는’ 건강보험 진료를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미용 시술 같은 ‘돈 되는’ 비급여 의료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면서, 의료 분쟁 등 부작용도 늘어나는 추세다. 2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연간 진료비 청구실적 자료를 보면, 서울시내 의원급 성형외과 315곳 가운데 건강보험이 적용된 진료비 청구 내역이 전혀 없는 곳이 93%인 293곳에 이르렀다. 임플란트 등 비급여 시술이 즐비한 치과는, 7.5%인 331곳에서 건강보험 청구가 아예 없었다. 피부과도 건강보험 진료 총액이 연간 5천만원도 안 되는 곳이 30%에 육박하는 등, 비급여 진료에 주력하는 곳이 급증하는 추세다. 건강보험 환자 중심인 내과의 경우 건강보험 진료 총액이 5천만원 이하인 곳은 5.1%에 지나지 않는다.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 청구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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