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35년여 독일 거주해온 임혜지씨
35년 가까이 외국에 살면서 내가 한국사람인 것이 부끄러웠던 적이 딱 한번 있었다. 북한 영화를 뮌헨의 영화박물관에서 봤을 때였다. 여주인공이 산사태 속으로 뛰어들어 당에서 하사한 양 한마리를 구하고 죽는 마지막 장면이 내 눈에 여간 민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북한 여자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며 서둘러 영화관을 빠져나간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내가 한국을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없다. 가난했던 70년대의 비참함도, 독재치하 80년대의 암울함도 내게는 조국이 부끄러울 이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여건을 질기게 견디며 한 발자국씩 극복해나가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그런 한국을 우습게 보는 독일사람을 만나면 무식한 인간이라고 내가 도리어 무시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럽게 생겼다. ‘24시간 학원교습’을 허락하는 법이 정식으로 통과된다면 나는 진정으로 내 조국이 창피할 것이다. 그런 부도덕한 아이디어가 버젓하게 거론될 수 있는 풍토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 뻔하다. 그런 야만적인 법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뽑은 대표들에 의해 합법적으로 제정된다면 인류 문화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미성년자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은 명백한 어린이노동이다. 나는 24시간 학원수강을 ‘악질적인 어린이노동’으로 이해한다. ‘학원 수강’이라는 명분으로 미성년자를 동원해 돈벌이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사람 잠을 안 재우는 것은 노동의 범주를 벗어나 고문의 범주에 든다. 아무리 교육이란 허울을 입혀도 아무도 속지 않는다.
각국 학생들의 실력을 비교하는 피사(PISA) 보고서에서 한국은 항상 1·2위를 다툰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이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고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억압적으로 점수 올리기에만 급급한 실상이 밝혀진 오늘날 한국의 교육은 주목받지 못한다. 그런 교육을 통해 길러진 일꾼은 궁극적으로 경쟁력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로 경쟁하는 이 시대에는 창조력이 가장 유용한 무기일텐데, 질보다 양을 요구하는 한국식 교육으로는 창조력을 기르기 힘들다.
몇 년 전 외국의 한 기업에서 긴 불황을 이기고 수출액 얼마를 달성했다고 자축하는 행사가 있었다. 전 세계의 고객들을 초청하고 당시 고위직의 정치인이 축하연설을 했다. 마침 자국 총선과 맞물린 시기여서 이 정치인은 자기 나라의 피사보고서 점수가 높다는 자랑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점수가 더 좋게 나온 한국을 비하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점수는 한국이 더 높게 나왔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이 시대의 모델감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을 한 것이다. 마침 고객석에는 이 회사의 물건을 사주는 한국 기업인들이 동시통역 리시버를 귀에 꼽고 앉아 있었다. 별 후유증 없이 지나갔지만 그때 회사쪽은 크게 당황했고 오랜 불황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도움 안 되는 소리만 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원성이 높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가 말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나도 그 정치인의 오만과 무지를 욕했지만 그가 한국의 교육실정에 관해서 틀린 소리를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국의 교육에 대한 평이 가뜩이나 좋지 않은데, 거기다가 심야학습을 시킨다는 소문까지 나면, 또 그게 합법으로 보호받는 상황이 된다면, 이제는 한국제품의 불매운동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나는 걱정이다. 어린이인권 보호의 차원에서 한국산 자동차와 컴퓨터, 이동전화기가 인도산 카페트와 나란히 불매운동 리스트에 올라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세계의 명문대학교 입학시험에서 한국 학생들이 부도덕한 방법으로 불공정하게 경쟁하는 도핑테스트 양성반응자 취급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학원과 학생, 학부모를 모두 범법자로 만드는 규제를 철폐하여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학부모가 자기 자식의 건강을 소홀히 한다면 나라에서 선도·계몽하고 감시하는 게 정석이다. 학원에서 청소년의 건강을 담보로 돈을 벌려 든다면 철저히 단속해서 뿌리를 뽑는 게 나라가 할 일이다. 학생들이 자진해서 심야학습을 원한다면 왜 그런 기현상이 일어나는지 고민하고 연구해서 자라나는 새싹들이 밤에는 단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궁리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일이다. 심야학습 허용법을 1차 통과시킨 100여명 서울 시의원들의 고민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사회에는 공인들이 꼭 지켜줘야 하는 선이 있다. 사회의 공론으로 승격해서는 안될 악덕을 구분하고 차단하는 선이다. 공인은 완벽하지 못한 인간으로서 자기 일기장에는 몰래 쓸 수 있어도 그것이 사회의 공론이 되지 않도록 이 선만큼은 양심을 걸고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서울 시의원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이들 100여명이 이건 정말 아니라고 떼지어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이 몹시 섭섭하다. 여당 정치인 중에도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다행이다. 어쩌면 심야학습 허용법은 정식으로 통과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국제사회에서 눈치 채고 문제삼기 전에 잊혀져, 아무도 이런 반인륜적 아이디어를 다시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뮌헨에서 임혜지 im1@hanamana.de
한국의 교육에 대한 평이 가뜩이나 좋지 않은데, 거기다가 심야학습을 시킨다는 소문까지 나면, 또 그게 합법으로 보호받는 상황이 된다면, 이제는 한국제품의 불매운동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나는 걱정이다. 어린이인권 보호의 차원에서 한국산 자동차와 컴퓨터, 이동전화기가 인도산 카페트와 나란히 불매운동 리스트에 올라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세계의 명문대학교 입학시험에서 한국 학생들이 부도덕한 방법으로 불공정하게 경쟁하는 도핑테스트 양성반응자 취급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학원과 학생, 학부모를 모두 범법자로 만드는 규제를 철폐하여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학부모가 자기 자식의 건강을 소홀히 한다면 나라에서 선도·계몽하고 감시하는 게 정석이다. 학원에서 청소년의 건강을 담보로 돈을 벌려 든다면 철저히 단속해서 뿌리를 뽑는 게 나라가 할 일이다. 학생들이 자진해서 심야학습을 원한다면 왜 그런 기현상이 일어나는지 고민하고 연구해서 자라나는 새싹들이 밤에는 단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궁리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일이다. 심야학습 허용법을 1차 통과시킨 100여명 서울 시의원들의 고민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사회에는 공인들이 꼭 지켜줘야 하는 선이 있다. 사회의 공론으로 승격해서는 안될 악덕을 구분하고 차단하는 선이다. 공인은 완벽하지 못한 인간으로서 자기 일기장에는 몰래 쓸 수 있어도 그것이 사회의 공론이 되지 않도록 이 선만큼은 양심을 걸고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서울 시의원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이들 100여명이 이건 정말 아니라고 떼지어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이 몹시 섭섭하다. 여당 정치인 중에도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다행이다. 어쩌면 심야학습 허용법은 정식으로 통과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국제사회에서 눈치 채고 문제삼기 전에 잊혀져, 아무도 이런 반인륜적 아이디어를 다시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뮌헨에서 임혜지 im1@hanaman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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