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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새 정부와 코드맞추기? ‘고무줄 집시법’ 논란

등록 2008-05-06 14:52수정 2008-05-07 17:24

진보신당이 5일 오전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자, 자녀와 함께 공원을 찾은 한 시민이 서명을 하고 있다. 과천/김진수 기자 <A href="mailto:jsk@hani.co.kr">jsk@hani.co.kr</A>
진보신당이 5일 오전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자, 자녀와 함께 공원을 찾은 한 시민이 서명을 하고 있다. 과천/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미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불법규정’ 파장
경찰조차 기준 모호…“수학 공식처럼 규정 못해”
반정부 집단행동 확산 막으려는 ‘엄포용’ 해석도

경찰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해 관련자들을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촛불집회는 이미 시민들의 평화적 의사 표현 방식으로 자리잡았고 지난 주말 행사도 차분하게 진행됐는데 경찰이 지나치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특히 불법 집회에 대한 경찰의 ‘고무줄 잣대’는 물론, 헌법정신과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집시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많다. 일부 누리꾼들은 “경찰이 쇠고기 수입 반대 구호보다는 이명박 탄핵 구호에 화들짝 놀란 게 아니냐”고 꼬집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들의 집회 문화가 자발적이고 비폭력을 추구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성숙해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 경찰의 코드맞추기 = 촛불집회는 여태까지 경찰과 충돌을 빚은 적이 없다. 형식 자체가 평화적인 의사표현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경찰도 이런 점을 고려해 지금껏 주최 쪽과 안전과 질서 문제 정도만 협의해왔다. 지난 2일 첫 행사 때만 해도 경찰은 이런 관례를 적용했다.


하지만 2일 1만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가하자 3일부터는 태도가 달라졌다. “정치 구호와 손팻말이 등장하는 등 문화행사가 정치집회로 변질됐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경찰의 태도 변화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난해 말 보수단체가 주도한 ‘북핵실험 규탄 촛불집회’ 등도 비슷한 성격이었지만, 당시에는 이런 기준을 적용하진 않았다. ‘이중잣대’란 비판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경찰이 규정하는 ‘정치 집회’의 기준도 모호하다. 한진희 서울경찰청장은 5일 오전 브리핑에서 “노래나 연극, 오락, 관혼상제를 하는 게 문화제이고, 사회단체 등에서 나서서 자기 의견대로 대중을 끌고 가는 건 집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단지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고 불법은 아니다”라든가, “수학 공식처럼 딱 뭐가 집회라고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처벌한다고 ‘공언’해놓고 정작 명확한 기준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한 ‘엄포용’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정치성이 배제된 문화행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데, 이를 처벌하겠다는 건 새 정부와 코드 맞추기로 밖에는 해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쇠고기 수입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쇠고기 수입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낡은 집시법 = 촛불이 필요한 밤 시간에 시민들이 모이는 것은, 직장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집시법 10조는 ‘일몰 뒤 집회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법을 그대로 따르면 ‘촛불집회’란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규정에는 ‘부득이한 경우 질서유지인을 두어 집회를 허락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1994년 이 조항에 대해 ‘질서유지인을 두면 당연히 집회를 허락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경찰이 지금까지 야간 집회를 공식적으로 허가한 적은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결국 헌법정신이 하위법인 집시법에 의해 제약받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독재정권 시절 만들어진 독소조항 때문에 정당한 집회도 문화제 형식으로 포장해야 한다”며 “이젠 법을 피해가는 게 아니라 비현실적인 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송호창 변호사도 “집시법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경찰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석진환 송경화 기자 soulfat@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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