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유족 연락 안돼”
동의 안해줘 20일째 방치
동의 안해줘 20일째 방치
황아무개(38)씨는 10년 전 아프리카 가나의 한 원양어업회사에서 일하다 현지인을 아내(36)로 맞았다. 근무계약이 끝난 황씨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귀국해 결혼식도 올리고 혼인신고도 했다. 아내의 국적도 바꾸려 했지만 급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한국엔 가나대사관도 없었다. 아이 셋을 키우느라 바쁜 삶을 살다보니 국적 취득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지난 4월22일 아내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이틀 만에 숨졌다. 장례를 준비하던 황씨는 뜻하지 않은 문제에 봉착했다. 아내는 외국인이어서 장례를 치르려면 해당국 대사관의 ‘장례 동의서’가 필요했다. 그러나 대사관 쪽은 “가나에 있는 유족들과 연락이 닿기 전에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통보했다. 아내가 가나에 살 때도 가족과는 거의 연락 없이 지냈다고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유족과 연락이 닿기만을 기다렸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아내의 주검은 보름 넘게 병원 냉장시설에 있어야 했고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엄마 주검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외교통상부, 경찰서, 시민단체 등에 방도를 찾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외국인 장례는 현지 유족의 동의를 받는 게 외교 절차상 관행이라는 것이다.
황씨는 지난 9일 아내의 주검을 가나대사관 앞까지 옮겨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는 “타국 땅에 와서 고생한 아내인데 가는 길은 편하게 해 줘야 하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가나대사관 쪽은 “규정에 정해진 일이니 어쩔 수 없다. 현지에서 언론을 통해 다방면으로 유족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숨진 경우에도 현지에서 장례를 치르려면 유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몇 개월째 장례를 못 치르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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