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방송 누리집인 <아프리카> 방송 진행자들이 지난 27일 새벽 서울 종로 종각 앞에서 벌어진 촛불문화제 거리 시위에 나와 노트북을 든 채 실시간으로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촛불시위 그대로 보여주려” 노트북으로 인터넷 생중계
온오프 통합시위의 촉매제…댓글과 결합해 여론 만들어
온오프 통합시위의 촉매제…댓글과 결합해 여론 만들어
“지금 종로 와이엠시에이 앞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다섯발씩 뒤로 물러나고 있지만, 시민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동혁(23)씨는 지난 26일 밤 서울 종로거리에서 자신의 노트북에 연결된 마이크에 대고 촛불시위 현장을 누리꾼에게 중계하고 있었다. 노트북엔 소형 웹 카메라가 장착돼 있었다. 전문 방송인처럼 매끄러운 진행은 아니지만, 그 순간 그의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은 1만5천명이 넘었다. 시위현장에 나오지 않은 누리꾼들은 그의 방송을 보면서 댓글을 달며 ‘사이버 촛불시위’에 동참했다.
나씨는 이미 누리꾼 사이에선 꽤 유명한 비제이(BJ·인터넷 방송 진행자)이다. 그는 사이버상에선 ‘롸쿤’ 이라 불린다. 지난 9일부터 촛불문화제를 생중계 하고 있다. 하루 방송시간은 기본이 12시간이다. 그는 방송인을 꿈꾸는 사람일까? 나씨는 자신을 “대학원 입학을 준비중인 평범한 학생”이라 소개한다.
나씨처럼 휴대 인터넷이 장착된 노트북을 이용해 촛불시위 현장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누리꾼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 중계족’ 또는 비제이(BJ·인터넷 방송 진행자)로 불린다.
일부 비제이들은 노트북 카메라가 아니라 고급 장비를 이용해 방송하는 사람도 있다. 방호석(34·서울시 혜화동)씨는 인터넷 생방송을 하려고 자비를 털어 방송사 브이제이(VJ)들이 쓰는 6mm 카메라를 샀다. 방씨는 “예전엔 촬영한 소스를 녹화 편집해 보여줬는데, 이제 화질 좋은 생방송을 하기 위해 6mm 카메라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날카로운 입담으로 주목받는 논객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씨도 최근에 ‘디지털 중계족’ 대열에 가담했다. 진보신당 인터넷 방송의 진행자로 나선 것이다. 진씨는 “집회에 참여 못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생중계를 통해 충족시켜 주려고 방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중계족들이 주로 영상을 올리는 동영상 사이트 <아프리카>(www.afreeca.com)에선 지난 25일 새벽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는 장면을 30만7천여 명이 시청했다. 이날 하루 촛불시위 방송 채널수만 총 1,363개였고,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저녁엔 동시 방송되는 채널수만 100여개가 넘는다.
일부 시민들은 생중계를 지켜보다 시위 현장으로 뛰쳐나왔다. 양안나(20·구리시 인창동)씨는 “25일 새벽, 시위대가 광화문 근처에서 물대포를 맞고 있는 장면을 인터넷 생중계로 보다가 현장으로 달려 나왔다”고 말했다. 누리꾼이 이렇게 방송을 하게 된 이유에는 기존 언론 매체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나씨는 “편향된 정보만 제공하는 공중파 방송을 믿을 수 없었다”며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방씨는 “시위대가 평화시위를 하고 있다는데 과연 그런 건지, 경찰이 정말 시민들을 때리는 지 직접 확인해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며 “공중파 9시 뉴스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씨는 “정말 거리 시위를 선동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보도 하겠다”고 덧붙였다.
송경재 교수(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는 누리꾼의 자발적 보도 시도를 ‘스트리트 저널리즘’이라고 분석했다. 스트리트 저널리즘은 지난 2005년 영국 지하철 테러에서 한 시민이 거리에서 휴대폰 카메라로 현장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최근 중국 티베트 시위나 미얀마 시위에서 기자들의 접근이 차단된 현장에서 시민들이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전형적인 사례다.
송 교수는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고, 디지털에 민감한 세대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거리에서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인터넷 공간에서 댓글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여론을 만들어 내고, 온-오프 통합시위의 촉매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재현기자 catalunia@hani.co.kr
‘아프리카’ 홈페이지 캡쳐 화면.
‘아프리카’ 홈페이지 캡쳐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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