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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권 핵심’ 향한 분노 “청와대로 청와대로”

등록 2008-06-01 19:34수정 2008-06-07 17:09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가 끝난 뒤 청와대로 행진해온 시위대가 31일 밤 서울 삼청동 들머리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경찰이 쏜 소화기 분말에 괴로워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가 끝난 뒤 청와대로 행진해온 시위대가 31일 밤 서울 삼청동 들머리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경찰이 쏜 소화기 분말에 괴로워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학생 100여명 연행 소식에 5만 촛불 “끝까지 싸우겠다”
밤1시 물대포 공격…“날밝아도 집엔 안가” 새벽까지 구호
“청. 와. 대. 로! 청. 와. 대. 로!”

시민들은 청와대로 몰려갔다. 경찰의 1·2차 저지선을 모두 뚫고 턱밑까지 갔다. 1960년 4월19일 이후 처음이다. 지난 31일 밤 10시부터 이튿날 아침 8시까지 청와대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효자로와 삼청동길은 시민 수만명의 분노와 함성으로 가득찼다.

경찰, 삼청동 시위대에 물대포 무차별 발사

[%%TAGSTORY1%%]

[현장] 효자로에 물대포 난사…시위대 “이명박 나와라”

[%%TAGSTORY2%%]

청와대 턱밑까지=31일 저녁 8시30분. 서울시청 앞 광장에 ‘대학생 10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청와대 턱밑인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다. 평화롭게 촛불행사를 치르던 5만여 시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문화제가 채 끝나기 전, 시민 3천여명이 먼저 “이명박은 물러나라!’, ‘쥐새끼를 때려잡자!”고 외치며 광장을 빠져나갔다. 곧이어 나머지 시민들도 차례차례 광장을 빠져나와, 안국동, 사직터널, 세종로 등 세 방향으로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이전 거리행진 때 시위대는 경찰에 막힐 경우 신촌이나 서울역 방면으로 밀려나면서 우왕좌왕했지만 최대 인파가 모인 이날은 사정이 달랐다.

밤 10시께 먼저 안국동 방면에서 경찰 저지선이 뚫렸다. 시위대가 청와대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삼청동길 들머리까지 진출한 것이다. 광화문로와 사직터널 방향으로 갔던 시위대도 저지선을 뚫고 효자로에 들어섰다. 세종로 저지선을 뚫거나 우회한 시위대도 합류했다. 밤 11시께 경찰은 광화문 앞길을 시위대에 내준 뒤 청와대로 가는 최종 저지선까지 완전히 밀려났다.


■ ‘고시 철회’에서 ‘독재 타도’로=31일 자정. 청와대로 통하는 대로 두 곳을 가득 메운 시위대는 3만여명으로 불어났다. ‘고시 철폐,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던 시위대의 구호는 어느새 ‘독재 타도’, ‘이명박은 물러나라’ 등으로 바뀌었다. 18개월짜리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정아무개(28·여)씨는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저버렸다. 이게 바로 독재다”라며 “이젠 대통령직을 내놓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 1시. 시위대의 위세가 거세지자 경찰은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밀집해 있던 시민들은 피할 새도 없이 물벼락을 뒤집어썼다. 일부 여성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내 다시 모였다. 물에 젖은 시위대 수백여명은 새벽 찬공기에 떨었고, 일부는 오한 증상이 심해 긴급히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경찰의 물대포 공격에 시위대는 한층 더 격앙됐다. 시위대는 ‘폭력경찰 물러가라’, ‘독재 타도’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전경버스 위에 올라가 항의하다 물대포를 맞고 떨어져 다쳤다.

5·31 촛불집회 ‘청와대행’ 흐름
5·31 촛불집회 ‘청와대행’ 흐름

■ 아침 6시 “집에 가지 않겠다.”=1일 새벽 4시. 서서히 동이 터왔다. 시민 1만여명이 여전히 ‘이명박은 나와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이어갔다. 시민들은 김밥과 물, 따뜻한 음료 등을 서로 나눠 먹으며 밤샘 시위를 견뎠다. 길가에 불을 피워 젖은 옷을 말리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이문동에서 온 강진원(28)씨는 “날이 빨리 밝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날이 밝아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침 6시. 시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자 물대포와 함께 방패를 앞세운 경찰이 시위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경찰 특공대도 수십명이 투입돼 강제 해산에 나섰다. 7천여명의 시민들은 금세 광화문을 지나 안국동까지 밀려났다. 12시간이 넘는 시위에 지칠대로 지쳤지만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며 8시까지 버텼다. 새벽 2시에 인터넷 방송을 보고 나왔다는 김아무개(43)씨는 “늦게 나왔으니 좀 더 있다 들어가겠다”며 “일단 시작된 만큼 이번 기회에 국민의 뜻을 확실하게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최현준 하어영 황춘화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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