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과 2008년’ 같으면서 다른
87년- 학생들이 외치고 ‘넥타이’ 합류08년
08년 무정형 그자체…종잡을 수 없다
08년 무정형 그자체…종잡을 수 없다
1987년 6월과 2008년 6월. 서울시청 앞 광장은 21년 세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르지만, 또 같은’ 수만 인파로 가득 찼다.
집회 참가자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87년엔 학생과 노동자 다수가 대열을 지어 모여들고 뒤이어 이른바 ‘넥타이 부대’가 손뼉치며 합류했다면, 이번에는 종잡기가 어려운 ‘무정형’이라 할 만하다. 5월31일에는 유모차에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 팔짱 낀 연인, 인터넷 카페에서 모인 누리꾼, 깃발을 앞세운 학생단체와 노동조합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광장에 모였다. 휴대전화는 물론, 인터넷과 연결된 개인 휴대용 단말기(PDA) 등을 가동한 소통구조 덕분이었다.
집회·시위 양상도 좀 달랐다. 87년엔 지휘부 ‘전략’에 따라 단일하게 움직였다면, 이번엔 계획 없이 느슨하게 행진했다. 돌멩이와 최루탄이 오가던 공방전은 사라지고, 시민들은 “비폭력!”을 외쳤다. 예비군복을 입고 ‘시민 지킴이’로 나선 이들도 있다. 집회·시위 실황을 중계하려는 시민들의 카메라와, 불법 행위를 채증하려는 경찰의 카메라가 동시에 등장한 장면은 87년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모였지만, 중·고생들은 “0교시 반대”, 대학생들은 “등록금 인하”, 보건의료단체는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 등으로 담론을 확장시켰다. 80년 5·18 민주화 운동으로 시작해 담론과 집회·시위 경험이 축적된 87년 인파와 달리, 집결한 뒤에 스스로 담론을 만들어내는 대중이 등장한 것이다. 87년과 2008년을 함께 겪는다는 나아무개(41)씨는 “수많은 시국선언으로 의식을 형성해 행동에 나선 그 때와 달리, 지금은 모인 시민들이 스스로 의식과 정치를 만들어 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 시민들의 목소리는 결국 ‘국민이 주인인 정부를 원한다’는 것으로 서로 같았다. 87년 시민들이 ‘국민의 손으로 뽑는 대통령’을 요구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일궈낸 것처럼, 08년 시민들은 국민의 표를 얻어 당선된 뒤 국민의 반대를 외면하는 대통령에게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인파 밖에서 이들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같았다. 택시를 운전하는 최아무개(42)씨는 “체증 때문에 시내로 운행하기가 겁나지만, 동참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시민들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열매를 누린 뒤,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탈근대적인 시민이, 전근대로 되돌리려는 권위주의 정부와 맞붙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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