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이 3일 오후 서울 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선고받은 뒤 법원을 떠나기 위해 차를 타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정몽구 회장 사실상 ‘유전무죄’ 판결
3일 정몽구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법원의 판단을 따르자면 ‘회사를 위해 횡령 및 배임을 저지르고, 범행 뒤 피해 회복과 사회공헌 등을 약속한다면 실형을 선고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스스로 몇 차례나 재벌 범죄에 대한 추상같은 심판을 공언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논리다.
횡령액으로 계열사 회생·사회환원을 배려이유로
“사재출연 통한 사회봉사 위법” 파기환송 의미 뭉개
재판부는 집행유예 선고 이유로 △비자금이 대부분 회사 경영을 위해 쓰이고 △횡령액에 대한 피해 회복이 이뤄졌고 △기소 이후 잘못된 관행을 깨뜨리려 노력했고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해 사재 출연을 약속했다는 점을 들었다. 고령(70살)이라는 점도 관대한 판결의 구실이 됐다.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해 경영활동을 금지하는 것보다, 건전한 기업활동을 통해 회사와 사회,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형벌제도의 이상에 부합된다”는 주관적 판단까지 곁들였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재벌 총수가 계열사를 살린다는 이유로 회삿돈을 빼돌린 점을 피고인에 유리한 사유로 삼기도 했다. 사건의 근본 원인인 ‘황제 경영’의 문제점에 눈감고, 현대·기아차그룹 스스로도 오래전부터 강조해 온 계열사 독립 경영은 빈말이 된 셈이다.
횡령한 돈을 범죄 후에 배상했다는 점은 법원이 그동안 기업범죄에 대한 봐주기 판결에서 인용하던 ‘단골 메뉴’다. 불법 행위로 생긴 이득을 되뱉는 당연한 과정을 피고인에 유리한 양형 사유로 인정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사후 배상을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고려하게 되면, 기업범죄를 저질러도 재력을 이용해 실형을 피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업무상배임 행위로 회사에 입힌 피해액에 대해서는 “액수가 확정되지 않아 배상하지 않았다”는 태도지만, 재판부는 “민사소송 등을 통해 피해 회복 조처를 다짐하고 있다”며 변호인을 자처한 듯한 태도까지 보였다.
이번 판결은 또 ‘사재 출연을 사회봉사명령에 포함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이 사건 파기환송 이유를 사실상 거슬렀다는 점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비록 복지시설 봉사 등으로 사회봉사명령 내용을 국한시켰지만, “사재 8400억원을 출연하겠다”는 정 회장의 약속을 강제수단을 붙이지 않은 채 받아들여 집행유예를 선고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파기환송 전 항소심 재판부가 내린 ‘이상한 사회봉사 판결’보다 후퇴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죄를 범한 재벌총수를 풀어주는 것이 국가경제에 기여한다’는 논리를 증명할 능력도 자격도 없는 법원이 앞장서서 재벌들에게 부정행위를 하고도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사재출연 통한 사회봉사 위법” 파기환송 의미 뭉개
현대차 비자금 사건 일지
이번 판결은 또 ‘사재 출연을 사회봉사명령에 포함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이 사건 파기환송 이유를 사실상 거슬렀다는 점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비록 복지시설 봉사 등으로 사회봉사명령 내용을 국한시켰지만, “사재 8400억원을 출연하겠다”는 정 회장의 약속을 강제수단을 붙이지 않은 채 받아들여 집행유예를 선고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파기환송 전 항소심 재판부가 내린 ‘이상한 사회봉사 판결’보다 후퇴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죄를 범한 재벌총수를 풀어주는 것이 국가경제에 기여한다’는 논리를 증명할 능력도 자격도 없는 법원이 앞장서서 재벌들에게 부정행위를 하고도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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