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문열(60·사진)
[이사람] ‘초한지’ 완간한 소설가 이문열
“다수의 침묵이 동조한 ‘민의의 승리’
시위 결함 있더라도 실정 책임 더 커”
경제 중시한 유방 내세워 새 ‘초한지’ “촛불시위는 위대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같습니다. 이 말은 빈정대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위대한 동시에 끔찍하기도 한데, 앞으로 정말 중요하고 큰 문제에 대해서도 또다시 이런 방식으로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승리로 만든, 침묵하는 다수의 선택도 저는 인정합니다. 본의든 몰랐든 침묵함으로써 이것을 ‘민의’로 만든 것은 그들이 ‘촛불’에 동조하거나 최소한 묵인한 것이라고 봅니다.” 소설가 이문열(60·사진)씨가 촛불시위에 대해 입을 열었다. 미국에 머물고 있다가 9일 일시 귀국한 그는 자신의 소설 <초한지>(전10권, 민음사) 완간에 즈음해 11일 낮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번 시위에서 광우병 문제는 그저 빌미가 되고 있는 것 같다”며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과 함께 감정적인 문제가 섞여서 사태가 커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 보이는 것이 정말 다수냐, 정말 민심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그럼에도 나서지 못하는 것은 침묵하는 이들이 그것을 민의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말 고약한 것은 촛불시위에 대한 어떤 미심쩍음과 의심이 있더라도 그걸 다 덮을 만한 정권의 실수가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초한지>는 진나라가 멸망한 뒤 중국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유방과 항우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이문열씨는 “사마천의 <사기>를 원전으로 하고 <자치통감>과 <한서>를 보조 자료로 삼아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 완전히 새로운 <초한지>를 썼다”고 밝혔다. 그는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기> 이후 중국의 사서들은 유방을 폄하하고 항우를 치켜세우는 느낌이 강했다”며 “나도 처음에는 항우야말로 소설적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소설을 끝낼 때쯤에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유방 쪽에 동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항우는 대의를 모르는 사람인 반면, 유방은 일찍부터 대의명분에 민감했으며 순발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 작가가 쓴 글을 보면 유방이 먹는 것에 집착해서 밥통만 잡고 있었던 것으로 그려지는데 그것 역시 편견”이라고 말했다. “백성에게는 먹는 것이 하늘이고 제왕에게는 백성이 하늘이므로, 유방이 식량과 농토에 집착한 것은 곧 하늘의 하늘을 지키려 했던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유방이 생각했던 ‘하늘의 하늘’과 지금 얘기되는 경제가 반드시 일치하는지는 의문이며 <초한지>를 쓰면서 오늘의 현실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2005년 12월 미국으로 건너갔던 이문열씨는 오는 10월 완전 귀국을 앞두고 있다. 그는 “앞으로 몇 달은 쉬면서 지낸 뒤, 구상해 놓은 다음 작품을 쓰려 한다”고 소개했다. “열흘 뒤면 회갑이라서 상당한 감회가 있다”는 그는 “잔치를 하는 대신 모처럼 온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시위 결함 있더라도 실정 책임 더 커”
경제 중시한 유방 내세워 새 ‘초한지’ “촛불시위는 위대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같습니다. 이 말은 빈정대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위대한 동시에 끔찍하기도 한데, 앞으로 정말 중요하고 큰 문제에 대해서도 또다시 이런 방식으로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승리로 만든, 침묵하는 다수의 선택도 저는 인정합니다. 본의든 몰랐든 침묵함으로써 이것을 ‘민의’로 만든 것은 그들이 ‘촛불’에 동조하거나 최소한 묵인한 것이라고 봅니다.” 소설가 이문열(60·사진)씨가 촛불시위에 대해 입을 열었다. 미국에 머물고 있다가 9일 일시 귀국한 그는 자신의 소설 <초한지>(전10권, 민음사) 완간에 즈음해 11일 낮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번 시위에서 광우병 문제는 그저 빌미가 되고 있는 것 같다”며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과 함께 감정적인 문제가 섞여서 사태가 커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 보이는 것이 정말 다수냐, 정말 민심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그럼에도 나서지 못하는 것은 침묵하는 이들이 그것을 민의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말 고약한 것은 촛불시위에 대한 어떤 미심쩍음과 의심이 있더라도 그걸 다 덮을 만한 정권의 실수가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초한지>는 진나라가 멸망한 뒤 중국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유방과 항우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이문열씨는 “사마천의 <사기>를 원전으로 하고 <자치통감>과 <한서>를 보조 자료로 삼아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 완전히 새로운 <초한지>를 썼다”고 밝혔다. 그는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기> 이후 중국의 사서들은 유방을 폄하하고 항우를 치켜세우는 느낌이 강했다”며 “나도 처음에는 항우야말로 소설적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소설을 끝낼 때쯤에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유방 쪽에 동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항우는 대의를 모르는 사람인 반면, 유방은 일찍부터 대의명분에 민감했으며 순발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 작가가 쓴 글을 보면 유방이 먹는 것에 집착해서 밥통만 잡고 있었던 것으로 그려지는데 그것 역시 편견”이라고 말했다. “백성에게는 먹는 것이 하늘이고 제왕에게는 백성이 하늘이므로, 유방이 식량과 농토에 집착한 것은 곧 하늘의 하늘을 지키려 했던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유방이 생각했던 ‘하늘의 하늘’과 지금 얘기되는 경제가 반드시 일치하는지는 의문이며 <초한지>를 쓰면서 오늘의 현실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2005년 12월 미국으로 건너갔던 이문열씨는 오는 10월 완전 귀국을 앞두고 있다. 그는 “앞으로 몇 달은 쉬면서 지낸 뒤, 구상해 놓은 다음 작품을 쓰려 한다”고 소개했다. “열흘 뒤면 회갑이라서 상당한 감회가 있다”는 그는 “잔치를 하는 대신 모처럼 온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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