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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국민주권 힘 보여준 ‘촛불혁명’이었다”

등록 2008-06-11 22:35수정 2008-06-12 14:59

박명림 연세대 교수 /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 김종엽 한신대 교수 /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박명림 연세대 교수 /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 김종엽 한신대 교수 /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학계·시민사회 긴급좌담 - ‘촛불대행진, 그 이후’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40여일 동안 폭발적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6월10일 광화문에 집결한 40만명의 거대한 물결은 촛불집회의 정점이었다.

<한겨레>는 촛불집회의 배경을 분석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긴급 좌담회를 마련했다. 정치학을 전공한 박명림 연세대 교수와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사회학을 전공한 김종엽 한신대 교수, 그리고 오랫동안 시민운동에 몸담아온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등 4명이 토론에 참가했다.

이들은 사상 초유의 촛불집회에 대해 “우리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며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87년 6월 항쟁을 비롯한 역대 모든 민주항쟁과 비교할 때 “촛불 혁명이라 불러 마땅한” 영향력과 의미를 지녔다고 평가했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촛불집회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일인만큼, “촛불집회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이 곧바로 현 정권의 명운과 직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악의 파국을 피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 열쇠는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쥐고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11일 오전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는 김이택 편집부국장의 사회로 두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시민 스스로 주체…촛불 진화하며 퍼져

2008년6월은 시대 가르는 역사적 ‘사건’


“촛불 집회가 아니라 촛불 혁명이다”

참석자들은 “모든 것이 새롭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까지의 일을 예상 못 했고, 앞으로의 일도 예상 못 하겠다”는 말도 주고받았다. 1987년 6월 항쟁을 비롯한 지금까지의 모든 운동과 뚜렷이 구분되는 대사건이라는 데 평가가 일치했다. 지식인의 말은 ‘개념’이고 운동가의 말은 ‘구호’인데, 기존의 개념과 구호로 최근의 상황을 설명해내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모습도 보였다.

사회=촛불집회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간 점검 차원에서 지금까지의 일을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촛불집회를 6월 항쟁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역대 민주항쟁과 비교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김종엽(이하 김) =87년에는 저항세력이 농성했다. 2008년에는 정부가 농성하고 있다. 가장 큰 차이다. 헌법 제1조가 노래로 불리고 있다. 주권자로서 정부에게 명령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시민들이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전형이 10대 소녀들이다. 우리 세대만 해도 권위주의 정부의 폭력에 대한 공포가 있는데, 이들은 그런 공포 자체가 말끔히 사라진 상태에서 자유롭게 발언하고 있다. 공포를 벗어던진 그들에게 정부도 폭력을 행사하기 힘들다. 이번 일을 ‘촛불집회’라 하는 것은 지나치게 겸손한 표현이다. ‘촛불항쟁’이 맞다. 만약 쇠고기 수입 재협상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촛불혁명’이라 일러도 손색없다.

조현연(이하 조) =예상을 뛰어넘은 정도가 아니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다양성 속에 발랄함과 명랑함이 있다. 시간이 가면서 진화하고 있다. 소녀들이 주부와 시민을 불러내고 운동가와 정치가를 불러냈다. 87년에는 시위대가 시민을 향해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이번에는 정반대다. 시민 스스로 주체가 됐다. 조직화된 운동단체들은 뒤늦게 참여했다. 어떤 면에서 이번 촛불집회는 기존 정당은 물론 운동단체들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다. 진정한 국민주권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나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집회의 배후에 친북좌파가 있다’고 선전했지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누구도 거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박명림(이하 박) =의제 설정 방식이 기존의 사회운동과 다르다. 과거에는 통일이니 탄핵이니 하는 큰 의제가 먼저 제기됐다면, 이번에는 쇠고기나 건강 문제 같은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요구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정치적 요구로 발전했다. 운동 내부의 수직적 권위주의도 해체했다. 참여자 사이의 수평성, 연대성, 기동성이 두드러졌다. 다양한 형태의 중심이 형성되어 토론과 운동이 이뤄지고 있다. 정당도 배척받고 시민단체도 주도권을 내준 상태에서 시민들의 힘으로 진행되고 있다. 만일 시민단체가 앞장섰다면, 지금과 같은 광범위한 참여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승창(이하 하) =2008년 6월은 그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역사적 ‘사건’이다. 기존 운동과 달리 통일된 중앙 지도부가 없다. 지금까지의 운동은 대표성 있는 인물이 지도부가 되어 의논하고 결정하는 단선적 방식이었다. 현재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이번 촛불집회의 지도부가 아니라는 것은 이명박 정부 말고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웃음) 예를 들어 대책회의 차원에서 ‘내일은 무엇을 해야 하나’를 논의해 계획을 세워도, 막상 촛불집회가 열리면 여러 시민들이 제시한 의견 가운데 하나로 취급된다. 중앙지도부가 없는 대신 의견 채택 과정에서 여러 개의 중심이 형성된다. 광우병 대책회의, 아고라 클럽, 마이클럽, 소울드레서 등이 각각의 측면에서 제 나름의 중심이다.

사회=대책회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어느 날 촛불집회가 시작돼 버렸다.(웃음) 그때부터 각 시민단체 사무실에 회원들의 의견 전화가 걸려 왔다. 그제야 몇몇 시민단체가 모여 논의를 시작했다. 2004년 탄핵 촛불시위 때만 해도 시민단체의 움직임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동시에 이뤄졌다. 이번에는 시민단체가 한발 늦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상황을 봤을 때, 예전처럼 중앙위원회 같은 상부 조직을 만들어선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저 대책회의 정도가 좋겠다 해서 상황실을 만들어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실무적으로 의논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주요 간부들은 이번 촛불집회에서 ‘개별 참가자’에 불과하다.

보수 일방 정치지형 촛불집회 토양 제공

공공성 영역 파괴 생존경쟁 내몰려 ‘폭발’

“후진화 원년이 촛불 집회를 만들었다”

촛불집회의 원인으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참석자들은 지난 대선과 총선 이후 형성된 보수 일방의 정치 지형이 이번 촛불집회의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원적 사회의 다양한 의제를 대변할 정치구조가 틀어막힌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의 ‘급격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광범위한 반발을 불렀다는 것이다.

사회=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가 이번 촛불집회에 어떤 영향을 줬나?

=대통령 취임 직후에 전국민적인 참여와 저항이 폭발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내가 알기로 선거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취임과 동시에 통치불능의 상태, 리더십 침몰의 상태가 나타난 것은 정치적으로도 전혀 새로운 현상이다. 노태우 정부 이후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는 어떤 면에서건 조금씩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급격한 ‘역전’이 진행됐다. 그런 점에서 2008년은 ‘선진화 원년’이 아니라 ‘후진화 원년’이라 할 만하다. 교육·의료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시장화·기업화가 너무 빨리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쇠고기 협상 문제가 단초를 제공했고, 전국적인 거리의 정치로 발전했다. 실망과 절망이 광범위한 계층을 결집시켰다. 공공성의 영역이 파괴되면서 개인이 직접 시장의 생존경쟁에 내몰리니까 삶에 대한 직접적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정치가나 운동가는 신자유주의를 일종의 ‘박제된 의제’로 다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민들이 어렵게만 생각했던 신자유주의를 피부로 직접 느끼게 됐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교육과 의료 등 삶의 영역 전반에서 어떤 피해를 주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국가 또는 정부의 역할을 묻게 됐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뭐라고 했나. “광우병 쇠고기는 안 사먹으면 되잖아”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그런 생각이라면 왜 대통령이 됐느냐’고 묻는 것이다. 고 김선일씨 피랍 사태를 생각해 봐라. 단 한 사람의 국민이 위험에 빠지더라도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이 정부다.

=지난 10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그나마 억누르고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표출되는 측면도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김대중이니까, 그래도 노무현이니까 하면서 절제하고 자제했는데, 그런 요소가 이명박 정부 들어 사라진 것이다. 10대들의 행동을 그런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대들은 이명박은 물론 김대중과 노무현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은 수동적 신자유주의가 진행됐다면, 이명박 정부는 능동적 신자유주의를 추진하고 있다. 국민들이 이제야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선명하게 깨닫게 된 데는 그런 배경도 있다.

=대통령도 보수 지향이고 의회에서도 보수가 과반을 차지했다. 보수가 ‘과대 대표’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덕분에 민주 의제와 진보 의제가 들어갈 틈이 사라져 버렸다. 대통령과 의회의 독주에 국민들이 좌절한 측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총선의 낮은 투표율을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당시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들은 나름대로 대단히 적극적인 항의를 표시했던 것 같다. 보수 일색의 기존 정치 지형에 대한 거부의 뜻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지형 자체에 대한 거부가 분명히 있다. 지난 총선 때의 46% 투표율은 단순한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 지형 안에는 자신이 선택할 만한 세력이 없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표시했던 결과다. 게다가 총선 이후 의회 구조는 다원화된 사회적 요구를 더더욱 수렴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촛불집회는 이런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그런 문제 제기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컨테이너 장벽을 쌓고 ‘어찌 됐건 우리는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촛불집회의 의미와 미래를 논의하는 긴급 토론회에 참석한 김종엽 한신대 교수(왼쪽부터),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토론회에 앞서 한겨레신문사 하니동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A href="mailto:khtak@hani.co.kr">khtak@hani.co.kr</A>
촛불집회의 의미와 미래를 논의하는 긴급 토론회에 참석한 김종엽 한신대 교수(왼쪽부터),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토론회에 앞서 한겨레신문사 하니동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진보세력 좌표 찾는데 새 동력 될 것”

“정권 퇴진의 국가적 불행을 막아야 한다”

‘이명박 퇴진’ 구호가 촛불집회 현장에서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일개 정권의 불행이 아니라 국가적 불행이라고 참석자들은 말했다. “답답하다”는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쇠고기 재협상 요구를 수용하는 것을 포함해 발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데도 이명박 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사회=대책회의 쪽에서는 6월20일을 시한으로 정하고 그 전에 쇠고기 재협상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했다. 촛불집회가 스스로 잦아들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일까. 집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재협상은 최저선이다. 재협상을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재협상을 한다 해도 이미 권위를 갖고 통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다만 재협상 요구를 수용해야 현 정부가 ‘자기 유지’를 할 수 있다. 이걸 수용하지 않으면 그런 ‘유지’조차 힘들 수 있다. 미국과의 잘못된 협상에 따른 기회비용을 국민들에게 치르게 하고 있는데, 재협상을 통해 그 비용을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부로서의 역할을 계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류세 환급 등의 유화책을 계속 내놓는 것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협상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 쇠고기 수입 재협상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정부와 국민 사이의) 협상 대상이 아니다. 국민에게 너무 많이 양보하는 것이 두려워, 적게 양보하는 정부는 결국 모든 걸 양보할 수밖에 없다.

촛불 끄는 최소한의 조건은 재협상뿐

장관 교체아닌 근본적 인식전환 시급
 

=재협상 요구를 거부하면 이명박 정부는 정말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4·19나 6·29 때도 처음에는 장관 몇 명 교체하는 수준에서 대응하다가 화를 자초했다. 민주주의 정부에는 두 가지 정당성이 필요하다. 법률 차원의 절차적 정당성과 업적 차원의 정치적 정당성이다. 지난 100일 동안 이명박 정부는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했다. ‘무능 정부’가 됐다. 정당성을 새로 구축해야 하는 불행한 정부가 됐다. 이제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예상을 넘는 커다란 파국 내지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지금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언제든지 대통령을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을 헌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과 헌법을 대립적 관계로 인식하게 된 국민들이 ‘우리는 헌법의 편이다. 민주공화국은 우리가 지킨다. 대통령은 바꿀 수 있지만, 민주공화국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퇴진한다고 해서 우리 헌정질서에 좋은 경험으로 남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 열쇠는 이명박 정부 자신에게 있다. 현재의 국면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정권의 의도와는 달리 하야하게 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런 정도의 심각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들을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 87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봐야 한다. 4·13 호헌조처 등 여러 차례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국민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졌다. 국가적 불행을 초래하기 전에 전직 대통령들에게 듣고 배워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웃음)

참여-대의 잇는 정치적 네트워크 필요

시민 ‘제도정치’ 직접 감시 계속될 것 
   

  “자본의 지구화에 맞선 세계적 사건으로 남을 것”

 촛불집회가 웅변하는 또다른 현실은 ‘거리의 정치’와 ‘제도의 정치’ 사이에 벌어진 간극이다. 거리의 정치에서 확인된 민의를 제도에 옮기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구도에서 구체적 방도가 무엇인지 뾰족수를 내놓지는 못했다. 다만 이번 촛불집회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 진보개혁 세력 전체에 걸쳐 근본적인 성찰과 좌표 설정을 가능케 할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일치했다.

   

 사회=지금까지 촛불집회에서 나온 목소리를 제도적 성과로 안착시킬 방도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한국 정치 변동 과정을 보면, 민주화는 시민사회가 주도하고 제도화는 정치엘리트가 주도했다. 참여와 대의 사이에 극명한 괴리가 있었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큰 차원에서 정부, 의회, 시민사회를 잇는 협치(거버넌스) 체제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특히 국민의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중대 사안의 경우에는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의 요소를 아우르는 정책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동시에 대의기관 내부의 협치도 강화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각 분야별로 각료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고, 여기서 결정된 내용을 대통령이 따르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제도적 보완만으로 문제 해결이 힘든 지점도 있다. 지금 촛불집회 연단에는 강기갑 의원을 제외한 어느 정치인도 올라갈 수 없다. 제도정치와 거리정치의 괴리를 상징하는 일이다. 이 정도로 심각한 괴리라면 사실 선거를 다시 하는 게 정상이지만, 정치 일정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국회법 개정도 하나의 대안이다. 청문 절차를 강화하고 상임위 중심으로 국회를 재편하고 각종 회의의 속기록을 공개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국회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정치 여건으로 보아 그런 내용의 법 개정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오히려 정부와 한나라당은 9월 정기국회에서 수를 앞세운 횡포로 각종 개악 입법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예정된 수순이다. 지금으로선 그런 횡포를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다.

 =그렇다. 제도적 대안은 그저 생각해볼 수 있을 따름이지, 현재의 정치 구도상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한국의 보수 정부들은 언제나 최소한의 변화로 대응하려다가 최대한의 변동을 강요당했다. 국회가 촛불집회에서 나온 목소리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각 분야의 법안을 개정하려 한다면, 그때 국민들의 저항은 정부는 물론 의회까지 포함하는 정치권력 전체로 번질 것이다.

 사회=그와 관련해 정국을 좌지우지했던 보수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제기는 인상적이었는데?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어떤 것은 보도하고 어떤 것은 보도하지 않는 식으로 언론의 기본적 역할을 방기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문제제기가 있다. 시장의 논리가 아닌 국민의 논리를 언론에 반영시키기 위해 광고주들을 압박하는 새로운 움직임도 시작됐다.

 =시민들 스스로 미디어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언론의 본령을 이해하게 된 측면이 있다. 그런 시민들이 보기에 조·중·동은 정파적 이해에 따라 진실조차 보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회=촛불집회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하는 시민들이 많다. 87년 이후 최대 인파가 모인 6·10 촛불집회 이후 촛불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촛불이 우리 사회에 남길 장기적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간단한 것은 정부가 재협상 요구를 수용해 국면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다만 정부가 컨테이너 쌓으면서 ‘농성 체제’로 가면 국민들도 장기적 모색에 들어갈 것이다. 쉽게 끝날 일이 아니다. 시민들을 봐라. 단호한 느긋함이 있다. ‘될 때까지 모이자’고 하지 않는가. 그들은 지치지 않았고 폭력에 대해 공포를 느끼지도 않는다.

 =앞으로 촛불집회는 어떤 형태로건 지속될 것이다. 제도정치의 변화가 없으면 그런 정치를 직접 감시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운동 진영의 성찰이 필요하다. 시민단체가 매개되지 않은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사실상 기존의 시민단체의 역할과 지위가 끝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동안 여러 정치세력이 추상적이고 거대한 문제에 집착했던 측면이 있다. 반면 촛불집회는 구체적이다. 삶의 구체적 요구에서 비롯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공기업 민영화 등 산적한 사안별로 촛불은 지속될 것이다. 이제 정당이 이를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았다. 참여 대 대의, 시민 민주주의 대 엘리트 민주주의 등의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제도화하느냐가 중요하다.

=촛불항쟁은 서구 유럽의 68혁명과 같은 성격이 강하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세계사적 의의도 있다. 자본의 지구화에 맞선 투쟁의 날개를 폈다. 언젠가는 촛불집회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에 경험한 문화혁명의 힘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경계를 새롭게 그어놓을 것이다.

정리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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