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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촛불은 눈물꽃, 꽃말은 우리삶

등록 2008-06-13 20:02

소설가 조경란
소설가 조경란
촛불집회 현장에서 소설가 조경란
어느날, 책상물림 글쟁이 광화문에 서다
어느때, 순수한 염원 이뤄낸뒤 돌아갈까

나는 종종 무엇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을까, 생각해볼 때가 있다. 많은 것들이 있을 테지만 태생적인 열등감 혹은 콤플렉스 같은 것들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열등감이나 콤플렉스 중에는 민주화 운동을 비롯해 시대의 크고 작은 문제들에 한 번도 능동적으로 참여해본 적이 없다는 것도 있다. 시위나 집회에 가본 적도 없고 ‘백골단’이나 ‘짱돌’을 본 적도, ‘최루탄’을 맞아본 적도 없다. 다른 무엇보다 내 개인적인 문제가 너무 크다고 느꼈을 것이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작가가 된 후에는 운동권, 혹은 후일담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 역시 심한 열등감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소설이라는 건 자신의 생이라는 집을 허물어 그 벽돌로 새 집을 짓는 그런 일이다. 내 벽돌이 한 장도 안 들어간 그런 집을 새로 짓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 내가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난달 이후 여러 날, 밤의 광화문에서 서성거리게 되었다. 이제야 나는 작가로서, 한 개인으로서 시대와 무관한 삶을 살기 어렵다는 것, 모든 급진적인 변화는 사실 점진적인 변화의 결과라는 것, 그리고 존엄성을 지키며 함께 나누고 함께 사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서울 정동에 있는 여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던 열일곱살 때부터 ‘광화문’이란 장소는 나에겐 헌책방과 극장과 찻집이 있는, 내가 최초로 접한 문화의 도시이자 광장이었다. 낮과 밤, 소음과 평화, 그리고 대로와 집들이 상호적으로 침투하고 있는 공간, 즉 완벽한 도시, 내 인생 최초의 ‘도시’인 셈이다. 이십여 년이 넘도록 그 거리를 걷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글을 썼다. 수도 서울 한복판인 그 광화문 사거리 차도를 횡단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한 텔레비전 문화프로그램의 ‘예술 예찬’ 코너에서 섭외가와 나는 ‘광화문’이라는 거리를 선택했다. 촬영을 하느라 광화문 사거리 차도를 잠깐 활보할 수 있었다. 그 거리를 이제 수시로 촛불을 들고 타박타박 걷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문득 앞을 보면 시인 L이 기린처럼 큰 키로 휘청휘청 걷고 있고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소설가 Y선생이 참담한 표정으로 묵묵히 시위 행렬을 따라오고 계시다. 후배들, 시인 S와 평론가 M은 물대포를 맞아 무릎과 허리를 다쳤다. 혼자 서 있어도 광화문에서는 혼자가 아니다. 각자가 들고 있는 촛불은 수십만 개의 촛불 중 일부를 이루고 있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이제 오늘로 꼭 44일째다. 이토록 진지하게 촛불을 바라다본 적이 없다. 먼 데서 온, 짠맛 나는 작고 투명한 물방울. 이 촛불은 눈물을 닮은 것 같다. 아니 혼자 타면서 혼자 꿈꾸는, 속으로 애태우면서 조용히 타오르는 인간 본래의 모습. 촛불, 이것은 되기 어려운 일을 되게 한 ‘도구’가 아니며 먹는 것을 하나의 빌미로 삼아 시작된, 뿔처럼 단단해진 국민의 감정과 분노도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달린, 그것을 가능하게 해달라는 순수한 염원과 기원을 담은 ‘붉은 꽃’이다. 세상은 고통과 소통의 부재로 가득하지만 또한 그것을 이겨내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다리도 아프고 눈도 뻑뻑하고 배도 고팠다. 날이 밝기 시작했고 나도 촛불을 껐다. 자발적으로 시작된 비폭력 집회였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저기 어디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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