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이란 단어에 “이적표현물”
서울지방경찰청은 4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한국진보연대가 촛불집회 초기부터 불법행위를 기획·주도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두 단체 지도부에 대한 형사처벌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경찰이 제시한 ‘범죄 증거’ 상당수는 인터넷 등에 이미 공개된 문건으로 “촛불의 배후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국진보연대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사무실 압수물을 분석한 결과 ‘광우병 투쟁지침’, ‘48시간 비상국민행동을 위한 행동제안’ 등 “두 단체가 불법집회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 문건에 적힌 ‘정부가 고시를 강행할 경우 즉각적인 규탄 활동을 조직해 주십시오’, ‘비상국민행동에서 토성 쌓기에 동참해 주십시오’, ‘8000번 버스 타고 청와대 갑시다’ 등의 내용이, “불법 가두시위를 선동하고 그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내린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이 제시한 압수 문건 내용은 이들 단체가 보도자료 등을 통해 시민과 누리꾼들에게 공개 제안한 것들이다. 대책회의는 지난달 20일 보도자료를 내어 “21일 국민토성 쌓기에 동참해 달라. 20일 저녁 모래주머니 만들기에 참여해 달라”고 공지했다.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에서 압수했다는 ‘광우병 투쟁지침’ 역시 이 단체 누리집 공지사항 게시판에 가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누리꾼 ‘제임스조’는 “그럼 주말에 촛불시위에 집중하지 말라고 하고, 경찰 폭력에 항의하지 말라고 하고, 평화행진 하지 말라고 해야 하냐?”고 꼬집었다.
‘색깔’을 덧씌우려는 수사 행태도 나타난다. 경찰은 최근 구속된 황순원 한국진보연대 민주인권국장의 집에서 ‘공화국은 참다운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인쇄물이 나온 사실을 뒤늦게 공개하면서,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에 대해서도 추가로 수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영장 신청 과정에서 이 문건을 법원에 참고자료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경찰청 누리집에는 “그럼 ‘장군’이란 단어 나오면 ‘김정일 장군’을 지칭하는 걸로 엮을 거냐”, “우리 헌법 1조에 나오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공화국’은 그럼 뭐냐”라는 등의 비판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2엠비(MB)탄핵투쟁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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