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수입 쇠고기 검역 및 규제 조처 완화 내용
개정고시, O157 검출돼도 일부검사·반송만 규정
06년땐 미 업체 승인취소 가능…“검역주권 포기”
06년땐 미 업체 승인취소 가능…“검역주권 포기”
미국에서 병원성 대장균 O157에 감염된 쇠고기의 리콜이 잇따르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지난달 26일 고시된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제품 수입위생조건’에서는 O157과 같은 인체에 치명적인 세균이 검역과정에서 발견돼도 우리 정부가 해당 작업장으로부터 쇠고기 반입을 당장 중단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균 감염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쉽게 들어오게 된 것은, 2006년 수입위생조건에 명시돼 있던 ‘안전 장치’들을 우리 정부가 4월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미국 쪽에 유리하게 풀어줬기 때문이다. 우선 2006년 수입위생조건은 O157 감염 가능성이 있는 분쇄육(간고기)은 아예 수입 금지 대상이었지만, 새 수입조건에서는 허용 품목에 들어갔다. 또 기존 위생조건으로는 검역 과정에서 위험물질이나 위생조건에 적합하지 않는 사항이 발견되면 해당 물량을 반송 또는 폐기 처분할 수 있었고, 우리 정부가 해당 작업장의 수출 선적을 잠정 중단할 수 있었다.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때는 우리 정부가 수출 작업장의 승인을 취소할 수도 있었다. 실제 2006년 12월21일 미국산 쇠고기에서 발암성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이 허용량 이상으로 검출되자 정부는 즉각 해당 작업장의 수출 선적 중단 조처를 취한 바 있다.
하지만 새 수입위생조건은 이러한 검역주권들을 대부분 무력화시켰다. 새 수입위생조건 가운데 수입 검역 검사 및 규제조처를 규정한 23, 24항을 보면, 검역 검사 과정 중 한 물량에서 식품 안전 위해가 발견되면 해당 물량 전체를 불합격 조처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작업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여전히 수입 검역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문제가 된 작업장 제품의 검사 비율을 높일 수 있을 뿐이다. 또 O157과 같은 병원성 미생물이 발견돼도 미국 검역 당국이 문제 원인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해야 할 의무가 없다. 수출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같은 작업장에서 생산된 별개의 물량에서 최소 두 차례 이상 식품 안전 위해가 발견되어야 하다. 이 경우에도 수출 중단일 이전에 수출 인증을 받은 쇠고기 제품은 수입을 해야 한다. 그나마 수출 중단 조처도 우리 정부가 아니라 미국 정부가 하도록 추가협상을 통해 명문화했다. 결국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내 검역 과정에서 O157이 검출돼도 해당 물량만 반송할 수 있을 뿐, 문제가 된 작업장의 수출을 막을 방법이 없다. 또 그 작업장에서 생산한 물량에 대해 전수조사를 할 수도 없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 작업장의 분쇄육 공정이 O157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우리 정부는 해당 작업장에 대한 수출 중단 명령을 내릴 국제법적 권한이 있다”며 “하지만 정부는 새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통해 이러한 검역주권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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