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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작은 차이 집착말고 넓게 연대하는 자세 필요”

등록 2009-05-29 16:41

진보가 나갈 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진보·개혁 진영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반성적 성찰의 계기가 되고 있다. 살아생전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진보’로 규정했지만, 진보·개혁 진영과 수많은 갈등을 빚었다.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집권’했던 노 전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몫이지만, 진보·개혁 진영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특히 진보·개혁 진영의 인사들은 참여정부와의 지나친 차별화, 대안 없는 비판을 아쉬워한다. 큰 공통점보다 작은 차이에 집착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과 협조를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있어 진보진영은 고민이 없었다”며 “이 부분에서는 진보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참여정부 초기 적잖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네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와 ‘교원평가제’ 등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불편해진 관계는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내내 풀리지 않았다. 김 교수의 말은, 만약 다른 의제를 설정해 추진했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박상훈 박사(정치학)도 “진보진영은 지나칠 정도로 작은 차이에 집착하는 점,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점 등이 문제”라며 “한국의 진보는 넓게 연대하는 자세가 늘 부족했고 그래서 소수파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참여정부 내내 진보·개혁 진영은 그 내부에서도 작은 차이를 차별로 키우고, 통합보다 분열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였다. 그 결과는 선거에서의 패배와 영향력의 퇴조로 나타났다. 반면, 지난 4월 재선거에서 진보·개혁 진영은 경기도 교육감 당선과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의 당선을 이뤄냈다. 어느 정도 반사이익도 있었지만, 큰 틀에서 보조를 맞춘 결과다.

한국의 진보는 그동안 ‘대안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늘 ‘2% 부족하다’는 인상을 줬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과 전통 야당의 ‘몰락’으로 활동 공간이 창출됐음에도 진보진영은 국민이 기댈 수 있는 현실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 ‘진보의 공백’을, 시민들은 ‘촛불’을 앞세운 직접행동으로 메웠다.


국민들이 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슬퍼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문학평론가인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기나긴 조문 행렬은 시민들이 약육강식의 시장독재와 반윤리적 구태정치에 대한 염증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민주적 가치와 문화에 대한 희망을 시급히 복원해 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구시대의 막내’라고 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구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놓고도 갖가지 제언이 나온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지금 이명박 정부는 구시대로 돌아가려 하지만 결국 주거와 교육 등 국민들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부분에서 진보와 보수의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도 “시민사회와 노동자·농민 등 확고한 지지층들의 힘을 모아나가는 게 우리가 다시 집권하기 위한 기본 전제”라고 말했다.

김기원 교수는 ‘실력을 쌓을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제대로 못한 것은 적절한 대안과 비판을 내놓지 못한 진보·개혁 진영 전체의 실패이기도 하다”며 “단순히 대안 제시에 머무르지 않고 기득권 세력에 대항할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개혁 진영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기간’이 끝나는 6월 초부터 적극적 행동을 통해 변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6월2일 ‘긴급시국회의’를 열어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쇄신과 국민통합 방안을 촉구하는 대정부 요구안을 내놓기로 했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이 대통령의 일방독주를 쇄신하지 않고서는 노 전 대통령의 급서와 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며 “이 대통령이 과오를 줄일 수 있도록 감시하는 게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책무”라고 말했다.

신승철 민주노총 사무총장도 “지금의 국민장 국면에서는 혼란을 우려해 미루고 있지만 앞으로 진보의 최대 과제는 ‘생존권 확보’를 위한 싸움”이라며 “이런 기조로 6월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길윤형 박수진 이정애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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