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아파 한의원 갔더니 화기 때문에 장 약해졌다고
돌아가신 분께 예 표한 게 정치적이라면 할말 없어
사회 중추적인 분들 사고가 그 정도라 생각 않고파
돌아가신 분께 예 표한 게 정치적이라면 할말 없어
사회 중추적인 분들 사고가 그 정도라 생각 않고파
‘KBS 하차’ 개그맨 김제동 김제동(35)씨는 요즘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산을 좋아해 자주 가거든요. 예전에는 산길에서 저를 만나면 그냥 웃고 지나들 가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자꾸 먹을 것을 주세요. 시장에서는 상인분들이 물건을 더 주시고요.” 힘내라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위로받는 현실이 조금은 당혹스럽다. 2008년 2월 김씨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식전행사 때 마이크를 잡았다. 교회에 다니는 그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날 노제 무대에 섰다. 4개월여 뒤 그는 <한국방송>의 ‘스타골든벨’ 메인 엠시를 느닷없이 그만둬야 했다. 방송사의 설명은 석연치 않았다. 논란이 일었다. 국회에서까지 그의 ‘하차 배경’을 두고 여야 사이에 정치적 공방이 벌어졌다. 그는 침묵했다. 그로부터 한 달 남짓 지난 뒤 그를 만났다. 그는 ‘퇴출’에 대해 “내 책임이 97%”라며 자기반성이 먼저라고 말했다. 노제 사회와 관련해 그는 대통령 취임식이나 영결식과 같은 국가적 행사에 사회자로 서는 일을 “도리”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보는 “몰상식한 사회지도층의 존재”에 대해서는 믿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3%의 가능성은 남겨뒀다. 웃음에는 좌우가 없다는 그. 살아 있는 한 웃음을 주는 일을 하겠단다. 방송 일도 더 하고 싶다. 하지만 “넘어진 김에 꽃 보고 간다”며 그는 방송 아닌 다른 공간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준비하며 가슴 뛰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12월5일부터 한 달 동안 대학로 이랑씨어터에서 열리는 토크 콘서트 ‘노 브레이크’다. 2년 전부터 꿈꿔온 일이다.
김제동씨는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웃음을 줘야 할 사람이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그 ‘사건’에 대해 그동안 그 자신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추슬렀다. 하지만 몸이란 놈은 생각보다 고지식하다. 몸은 마음이 겪는 일을 꼭 드러낸다. 김씨는 얼마 전 장염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했다. 몸을 추스르려 찾은 한의원에서는 화기로 인해 장부가 약해졌다고 했다. 속이 상하긴 상했나 보다.
스스로를 ‘웃음을 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김제동씨는 “좋아하던 분이 돌아가셔서 사회를 보는 게, 돌아가신 분에게 예를 표하는 게 정치적이라면 할 말이 없다. ‘모두가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고 한 게 정치적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정치적이다”라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스타골든벨 하차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됐습니다. 당시 심경은 어땠습니까? “4년 동안 해온 프로그램은 제 생활의 일부입니다. 그다음주 월요일(녹화일)이 사실 힘들었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다 ‘아, 오늘 녹화가 없지’라는 생각이 들어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산으로 갔습니다. 말들이 많았지만 제가 그 프로그램에 얼마나 열정을 쏟아부었는가를 반성하는 것이 진행자 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외부 요인은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것이 맞든지 맞지 않든지 간에 2차적인 문제입니다. 또 적어도 이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계신 분들의 생각이 그 정도밖에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노제 사회와 같은 정치적인 활동으로 ‘엠시 하차’라는 불이익을 받았다고 여깁니다. “(방송인으로서) 정치적 편향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에 100% 공감합니다. 하지만 맹세코 전 단 한 번도 정치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던 분이 돌아가셨는데 사회를 보는 것이, 돌아가신 분에게 예를 표하는 것(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 조문한 뒤 방명록에 ‘잊지 않고 잃지 않고 살겠습니다. 대통령님의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중의 한 명이어서 행복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사랑에 보답하고 살겠습니다’라고 썼다)이 정치적인 것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 트위터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이것이 좌나 우로 나눌 수 있는 개념이라면,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면 좋습니다. 저는 정치적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도 사회를 본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없었나요? “(대통령 취임식 사회는) 아주 영광스런 자리였습니다. 정당 행사나 어용적으로 동원된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에 사회를 보는 것을 정치적인 행위라고 볼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전화가 왔는데 매니저가 잘못 알아듣고 인순이 선생님이 취임한다고 하는데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해서 한참 웃었던 기억도 나네요.” 그는 몰상식한 사회가 가장 웃기는 사회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과 진실이, 정권과 민족이 혼동되는 사회는 그에게 몰상식한 사회다. 물론 좋은 몰상식도 있다. “자꾸 한계를 지워나가는 것입니다. 상식이라고 규정되고,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져 있는 어떤 규제들, 생각의 틀들 이런 것들을 지워나가는 것은 좋은 몰상식입니다.” 힘들 때 달래주는 세 친구는 이승엽, 술 그리고 산
넘어진 김에 꽃 보듯 토크콘서트로 사람들 만날 것
원래 꿈은 선생님...놀며 배우는 대안학교 만들고파 -이번 일을 계기로 방송인이나 연예인의 사회참여에 대해 생각을 해보셨는지요? “숨쉬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다 사회활동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축구팀을 응원하는 것과 방송인이 특정 장소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다르지 않나요? “(발언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거나 영향을 준다면 신중해야 합니다. 미칠 파장을 떠나 제가 믿는 것을 옳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이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는 (말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골든벨을 그만둔 뒤 다른 방송이나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오지는 않습니까? “예능프로는 섭외가 안 오고 자꾸 시사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옵니다. (시사프로그램에는) 안 나가렵니다.(웃음)” -성공한 방송인치고는 이력이 특이합니다. 공채 아나운서나 탤런트 출신이 아니고 배우나 가수도 아니었는데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동일화되는 과정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크게 경외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외모가 (방송에) 나오니까 ‘저렇게 생긴 사람들도 텔레비전에 나오는구나’라며 쉽게 동일화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방송인으로 성공한 뒤 우울증이 생겼다. 아주 가끔은 약도 먹는다. “서민들과의 빠른 동일화 과정을 거쳐 서민에서 빨리 벗어난” 역설이 그를 힘들게 했다. 채무의식을 넘어 죄책감까지 느낀다고 했다. 거의 해마다 억대의 돈을 남을 돕는 데 쓰는 이유다. 그는 이를 갚아드린다고 표현했다.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에. “착한 일이 아니라 제가 살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빚에 쪼들리면 힘들지 않습니까? (나눔은) 빚을 갚는 거니까요. 물질 이외의 것들로도 하려고 계획중입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될 수 있으면 많은 곳에 서있고 싶습니다.” 그는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망은 물에 새기라는 말’을 실천하며 산다. 지금 소속된 기획사로 옮길 때는 계약금 한 푼 받지 않았다. 윤도현씨 등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이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벌어진 논란이 더욱 부담스럽다. 그는 “황금돼지가 아닌 고슴도치가 들어온 셈이죠”라며 소속된 기획사에 거듭 미안함을 표시했다. -좋은 일을 많이 해도 주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너무 튀지 말라는 것이겠지요? “누나들이 가장 곱지 않게 봅니다. 우리 집 전세가 얼마인 줄 아느냐고요.(웃음)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모난 돌이 물론 정을 맞죠. 그러나 정으로 쪼아 놓은 조각품치고 자연의 바위보다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모난 돌도 있어야죠. 그런데 저는 모난 돌 아닌 것 같은데….(웃음)” -방송인으로 당분간 정체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되지는 않나요? “제가 정체되어 있다는 것은 몇 년 전부터 느꼈습니다. 빠르게 진화하는 예능프로그램들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몸개그를 하려고 집에서 넘어지는 연습까지 해봤어요. 안되더라고요. 적응하면 저를 잃어버릴 것 같고, 저를 계속 고집하면 따라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제일 좋겠지만 심야시간대에 2~3% 시청률이 나와도 좋으니 저를 잃지 않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얼마 전 문화방송(MBC)에서 시험 제작해 방영한 <오 마이 텐트>도 정규 편성 진입에는 실패했다. “흔한 일”이지만 2009년 겨울, 그의 가슴은 시리다. 하지만 그에게는 세 벗이 있다. 이승엽 선수가 첫째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아는 사이”라고 한다. 이날도 인터뷰를 마친 뒤 “승엽이와 당구를 하기로 했다”며 떠났다. 다음은 술. 막걸리와 소주를 섞은 막소주를 즐기는 그는 “술을 먹은 뒤 솔직해지는 분위기가 좋다.” 그의 또다른 위안처는 산이다. 그는 산을 탄다는 말 대신 업힌다고 표현한다. 산은 오르는 대상이 아니라 편안하게 그를 업어주는 할머니 같은 존재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지쳐 힘이 들 때면 그는 ‘할머니 산’에 업히러 간다. 김제동은 어록을 가진 방송인이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죠. 우리는 네잎클로버를 따기 위해 수많은 세잎클로버들을 짓밟고 있어요. 그런데 세잎클로버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행복이랍니다. 우리는 수많은 행복 속에서 행운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랑은 서로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기댈 곳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책과 허영만의 만화를 제일 좋아한다는 그는 독서량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집에는 네 종류의 신문이 배달된다. ‘김제동 어록’은 그런 독서와 글읽기가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 정도 말을 할 수 있는데 저는 다만 마이크를 얻었기 때문에 좀 널리 알려졌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김제동.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토크 콘서트를 준비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방송인으로서 그런 방식으로 대중과 만나는 경우는 드문데요. “2년 전부터 해보고 싶었습니다. 지근거리에서 아무런 장벽 없이 (사람들과)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아무런 편견 없이, 심지어는 마이크도 없이. 소주 토크도 해보고 싶습니다. 질문 한 번 받을 때마다 술 한 잔 먹고, 술 취해서 쓰러져서 횡설수설도 해보고, 환불해달라면 환불도 해주고. 물론 비밀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그는 공동체 운동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대안학교는 몇 해 전부터 그의 머릿속에서 구체적인 형상을 띠어가고 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성공회대학교에 편입한 것도 이런 그의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전문대 출신으로 사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만 배우고 싶었습니다. 이력으로서의 학교가 아니라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성공회대를 선택한 이유는 적어도 제 기준에서는, 더 좋은 학교를 찾지 못했습니다.”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 꿈이 원래 선생님이었습니다. 성적이 안돼서 사범대를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환상의 짝꿍>에 나온 8살 아이가 ‘꼭 미국 사람과 결혼할 거다”라고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영어는 잘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들고 싶은 학교는 15분 수업하고 45분 휴식하는 학교입니다. 컴퓨터와 게임기를 철저히 배제하고 45분간 사람하고만 노는 것입니다. 그에 앞서 3개월 과정의 영어캠프를 준비중입니다. 아이들 10명이 조를 짜 원어민 강사 한 명에게 한글을 가르치도록 할 생각입니다. 3개월 뒤에 원어민 강사가 필기시험을 봅니다. 잘 가르친 아이에게는 상을 주려고 합니다. 원어민 강사들이 우리말을 잘 못하는 것 보면서 아이들이 영어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방송인 아닌 김제동을 많이 만났다. 공사장 인부로 자신이 살던 집을 철거했던 가난한 청년, 늘 책을 끼고 다니는 늦깎이 대학생, 해마다 거액을 다른 이를 돕는 일에 쓰는 가슴 따뜻한 사람, 대안학교 설립에 관심이 많은 사회 운동가 등. 그럼에도 그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웃음의 의미를 물었다. “웃음은 애정의 표시이자 공감과 인정의 표시입니다. 누구나 웃을 수 있고 누구나 웃길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공평합니다. 웃음은 나누고 나눠도 모자라지 않는 무한한 에너지입니다.” 그는 앞으로도 웃음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 일이 편하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좋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정리/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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