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어려울때 파업 있을수 없다” “타협말라” 협상 싹 잘라
“어려울때 파업 있을수 없다” “타협말라” 협상 싹 잘라
이명박 대통령이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과 관련해 연일 노조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노조를 사회악쯤으로 여기고, 파업을 불법으로 등치시키는 이 대통령의 오래된 노동관도 거침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 대통령은 2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서울본부의 비상상황실을 방문해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등으로부터 파업과 철도운행 상황을 보고받고 “일자리가 보장된 사람들이 경제가 어려운 연말에 파업을 하고 있다”며 “지금 지구상에서 이런 식으로 파업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등지에서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고 있는 사실은 간단히 외면당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것 아니냐”고 말해,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명확히 했다.
현대건설 최고경영자 출신인 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노조와 파업을 불온시하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2007년 5월 한 강연에서 인도의 소프트웨어 회사 방문 경험을 들어 “그 사람들은 프라이드(자부심)가 있기 때문에 노조를 만들 수 있어도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당시 민주노총에 가입한 서울시 오케스트라 노조를 개탄하고, 교수노조 합법화 법안의 국회 상임위 통과에 대해 “도대체 대학교수가 노조를 만들겠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말해, ‘개발독재 시절의 반노동자·반노조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특히 대기업과 공무원 노조의 파업에는 어김없이 ‘불법’의 꼬리표를 달았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등의 가치는 뒤로 미룬 채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경제도 어려운데 파업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이 대통령은 2007년 6월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에 대해 “기업들을 해외로 나가게 만들고, 노동시장도 경직시켜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힌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서도 “일자리가 보장된 사람들이 파업한다”고 말했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노동법)는 “이번 파업은 절차와 목적을 다 지킨 합법 파업이고, 파업 등 단체행동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이라며 “이 대통령의 발언은 노동3권의 헌법적 가치를 무시한 것으로, 파업을 무조건 불법으로 보는 과거 군사정부의 유산이 대통령의 인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노사관계에 직접 나서 “타협하지 말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대통령이 나서서 노사 중 어느 한쪽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철도공사 쪽에 ‘(노조와) 대화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이렇게 되면 철도공사의 운신의 폭은 좁아지고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고 말했다.
이병훈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장은 “최근의 노사갈등은 정부가 공공기관 선진화를 일방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심화된 것”이라며 “정부가 제대로 된 일자리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노조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처럼,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정부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노조를 길들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준범 남종영 기자 jaybee@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