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대전시 대덕구 송촌동 한국도로공사 대전지사 소금창고에서 도로정비원 김양성씨가 눈이오면 고속도로에 뿌릴 소금 적재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을 준비하며 밝게 웃고 있다. 대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휴가중 계약해지 통보…노사협의로 일터 되찾아
“일이 이렇게 좋은데 복직못한 동료 생각에 씁쓸
“일이 이렇게 좋은데 복직못한 동료 생각에 씁쓸
2009 사람들 도로공사 무기계약직으로 돌아온 김양성씨 김씨가 형광색 작업복을 다시 입은 건 지난달 2일이었다. 일자리를 잃은 지 넉달 만이다. “실직 뒤에 모든 게 꼬여서 복직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내의 첫말이 그동안 못 번 돈을 벌라고 하더군요.” 김씨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그는 한국도로공사 대전지사에서 일한다. 지난 7월1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비정규직법)의 무기계약직 전환 조항이 발효되자, 김씨는 작업복을 벗어야 했다. 6월30일로 계약이 종료된 그에게, 사무실에서는 ‘우선 연차를 쓰라’고 했다. 집에서 열심히 텔레비전과 신문을 들여다봤다. “기간제든 무기계약직이든, 다시 일을 할 수 있나 하고 뉴스만 보고 있었다.” 그러길 열흘, 7월10일 자신이 퇴직처리된 것을 알았다. 법은 2년 이상 근무하면 고용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이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실은 법과 거리가 멀었다. 2006년 4월, 1년 계약으로 입사해 2007·2008·2009년 세 차례 계약을 연장하며 3년하고 석 달을 일한 그였다. “법은 잘 몰랐지만,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으리란 희망이 있었다”는 그는, 당시 “왜 사용자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지” 묻고 싶었다고 한다. 대량해고의 공포는 김씨에게만 닥친 게 아니었다. 공공기관은 김씨와 같은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는커녕 계약을 해지하기 시작했다. 도로공사뿐만 아니라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 한국산재의료원, 보훈병원 등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은 대부분 해고됐다. 그동안 ‘공공기관 비정규직대책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정규직 전환에 앞장섰던 정부도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자 ‘100만 해고 대란설’을 내세우며 기간 제한을 연장하는 법 개정에만 매달렸다. 추진위원회는 폐지되고, 2007년 4%였던 공공기관 정규직 미전환율은 2008년에 12%로 껑충 뛰었다.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김씨에게 불행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왔다. 살고 있던 임대아파트의 회사가 부도나 보증금 2000만원을 날릴 위험에 빠졌다. 이 보증금으로 분양받은 아파트의 잔금을 내려던 ‘내집 마련 꿈’도 날아갈 것 같았다. 아내가 전북 전주시의 한 병원 식당에서 일하며 떨어져 지낸 가족은 이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살림을 합치기로 했는데, 8월에는 어머니마저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갔다. 병원비 1000만원도 구해야 했다. 추석 때 고향집에서 실직한 사실을 숨기느라 곤혹스러웠다고도 했다. “돈이 없었다. 가까운 길은 걷고 먼 길은 버스 타고 다녔다. 대신 담뱃값만 많이 들었다. 하루에 서너개비 피우던 담배를 한두갑씩 피워댔으니까.”
그가 다시 희망을 찾은 건 11월. 도로공사는 노조와 오랜 협상 끝에 비정규직 구제 대책을 내놓았다. 일한 지 2년이 넘은 145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했고, 김씨처럼 7월 이후 계약해지된 32명의 비정규직도 다시 불러들였다. 정회권 고속도로관리원노조 위원장은 “고속도로에서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같이 일한 동료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떠나는 것을 직원들 모두 안타깝게 생각했다”며 “어차피 같은 월급을 줘야 하는데 숙련 노동자를 2년마다 해고하고 비숙련 노동자를 다시 교육시키는 게 경영효율상 좋지 않다는 판단을 회사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무기계약직으로 복직했다. 다시 일자리가 생기자 은행은 대출을 해줬고, 아파트 분양 대금도 치렀다. 전주의 가족도 올라와 이달 말 합치기로 했다. 그는 앞으로 중장비 운전자격증 등을 준비하면서 정규직으로 될 기회를 잡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무기계약직은 고용이 보장되지만 임금·복지 등 근로 조건에선 여전히 정규직과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김씨가 꾸는 꿈은 ‘신데렐라’의 꿈이다. 비정규직 575만명(정부 추산)은 여전히 김씨가 통과한 터널 앞에 서 있는 상태다. 올해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2년 이상으로 늘리는 내용으로 법 개정을 추진했던 정부와 여당은 내년 상반기에 다시 개정 논의를 들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 김씨는 “아직 일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비정규직들을 생각하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노동자 처지에서 한번이라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글 이완 기자 wani@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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