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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람대접 못받는 ‘2010년의 전태일들’

등록 2009-12-31 20:29수정 2009-12-31 20:45

사람대접 못받는 ‘2010년의 전태일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태일 분신 40년]
전태일의 분신 이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등장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는 등 민주노조 운동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하지만 아직도 40년을 뒤늦게 걷는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 여전히 이들에겐 자주적인 노조가 절실하고, 대학생 친구가 필요하다. ‘2010년의 전태일’들을 만났다.

땀 흘려도 밑바닥
한달 벌이 20만원 ‘워킹푸어’ 박일선씨

한달 벌이 20만원 ‘워킹푸어’ 박일선(48)씨
한달 벌이 20만원 ‘워킹푸어’ 박일선(48)씨

박일선(48)씨는 전태일이 숨진 4년 뒤인 1974년 미싱 ‘시다’(미싱사 보조)가 됐다. 그의 나이 열두 살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그가 할 수 있는 건 시다가 유일했다.

서울 쌍문동, 먼지가 가득 찬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첫 달 그가 손에 쥔 돈은 4만5000원. 동생들 학비를 대기 위해 2만원은 집으로 부쳤고, 적금 1만원, 방세 5000원, 쌀 한 말 2500원, 연탄 100장 2500원을 내고 난 뒤, 나머지 5000원으로 한 달을 살았다. “임금이 체불돼 동대문에 나가서 시위를 한 적도 있어요. 그때 전태일 얘기를 들었죠.”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지금, 박씨의 살림살이는 나아졌을까? 아니다. 그가 지난달 손에 쥔 돈은 24만원. 그는 열심히 일해도 돈을 벌 수 없는 ‘워킹 푸어’(근로 빈곤층)다. 박씨는 가정관리사(파출부)로 하루 4시간을 일하고 3만원을 받는다. 경기가 좋지 않아 일이 많이 줄었지만, 한때는 주말도 없이 매일 빨래와 설거지, 청소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박씨가 번 돈은 한 달에 20여만원. 지금은 한 집에서만 일하지만, 운이 좋아 세 집을 뛰면 60만원까지 번다. 여기에 남편이 공공근로로 벌어온 20만원을 합친 최대 80만원이 박씨 가구의 한 달 소득이다. “노력하고 산 것 같은데 계속 제자리예요.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죠.”

박씨의 삶이 제자리를 맴도는 것은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 탓이 크다. 현재 가정관리사, 간병인, 요양보호사 등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박씨도 계속되는 일로 지난해 입이 돌아가고, 자궁근종 등 질환으로 일을 쉬어야 했지만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그는 “돈을 모아야 하는데 1년에 한 번씩 입원이라도 하면 모을 수가 없죠”라고 말했다. 낮은 급여로 인한 과도한 노동이 몸을 망가뜨리지만, 사회보험의 혜택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다시 일에 나서야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셈이다.


박씨는 “이번에 대학을 졸업할 두 아이는 정규직 같은 좋은 일자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주말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대학을 다녔다. 전태일과 같은 공간에서 동시대를 살았던 박씨는 36년이 흐른 뒤에도 197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글·사진 이완 기자


법은 사장님 편
부당해고 맞서는 ‘이주노동자’ 미셀

부당해고 맞서는 ‘이주노동자’ 미셀 카투이라(37)
부당해고 맞서는 ‘이주노동자’ 미셀 카투이라(37)

‘단 하나의 불꽃’(single spark). 미셀 카투이라(37)는 영어 제목이 뚜렷한 영문판 <전태일 평전>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40년 전 전태일이 살았던 시대는 우리 이주노동자가 사는 환경과 비슷해요.”

‘미셀’로 불러달라는 그는 필리핀 출신이다. 초등학교 행정직원이던 그가 2006년 한국에서 처음 한 일은 자동차 범퍼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이었다. 그 뒤 플라스틱 사출과 액세서리와 전자제품 공장 등을 옮겨 다녔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한국인 노동자가 숙소에 들이닥쳐 여성 동료에게 잠자리를 요구했어요. 회사에 경찰 고발을 요구했지만, 그러면 너희들을 쫓아내겠다고 협박하더라구요.”

불편한 첫인상은 계속됐다. 하루 12~15시간의 장기 노동, 툭하면 떼어먹는 초과근무수당과 퇴직금, ‘반장님’의 욕설과 하대 등에 맞서 만날 싸워야만 했다. 동료들은 이런 상황을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직장을 옮기려 해도 고용허가제에 따라 3년에 딱 세 번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기 용인에 있는 한 공장의 ‘사장님’도 근로기준법을 어기기 일쑤였다. 동료 한 명은 계약기간을 남겨두고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 두 여성 노동자도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내가 나섰어요. 피해 사례를 모아 진정서를 쓰기 시작했죠.”

근로기준법 위반사례를 모아 노동청에 제출한다고 하자, 그제야 ‘사장님’은 해고 의사를 철회했다. 그리고 미셀은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초기업노조인 ‘이주노동조합’ 활동가로 변신했다. 전태일처럼 노동자들의 고민을 듣고 대처 방법을 알려주는 게 그의 일이다.

이주노동자 45만명은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취약 근로조건에 노출돼 있다. 문제는 이주노동자를 인력자원 문제로 보는 정부의 관점이다. 미셀은 “한국 정부는 우리가 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말하지만, 결국 법은 ‘사장님’의 편”이라고 말했다.

2010년 이주노동자들은 1970년을 살고 있다. 한 달 2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새벽잠을 깨 12시간 넘게 일하고 밤늦게 서울 서대문 이주노조 사무실로 돌아와 업무를 처리하는 미셀의 모습은 40년 전 전태일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언감생심 정규직
조선소밥 10년 ‘사내하청’ 못벗는 김대조씨

조선소밥 10년 ‘사내하청’ 못벗는 김대조(가명)씨
조선소밥 10년 ‘사내하청’ 못벗는 김대조(가명)씨

김대조(가명)씨는 사내하청 노동자다. 그는 조선소에서 일하며 팔이 두 번 골절됐지만, 산업재해를 신청한 적은 없다. 지난 11월에는 단 이틀만 쉬었다. 이유를 묻자, 김씨는 “겉보기엔 자율적이지만, 사실은 반강제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정규직’과 ‘사내하청’으로 구분된다. 김씨의 작업복 오른쪽 가슴에 붙여진 흰색 명찰에는 업체명이 검정색 글씨로 박혀 있다. 정규직 명찰에는 업체명이 아닌 소속 팀의 이름이 쓰여 있다. 명찰은 정규직과 사내하청을 가른다. 회사 근처 삼겹살집 주인도, 술집의 ‘아가씨’들도 명찰을 보면 ‘계급’을 알 수 있다. 사내하청은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지만, 원청이 아닌 작업을 도급받는 소규모 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를 말한다.

지난 28일 저녁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근처 식당에서 김씨를 만났다. 용접 일을 하는 그의 손가락은 억세 보였다. 그는 “내가 자본주의는 잘 모르지만, 왜 정규직으로는 일할 수 없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20여척의 배가 건조되고 있는 조선소에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1만7000여명 일한다. 조선소 밖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까지 합하면 2만여명으로, 7000여명인 정규직 노동자의 세 배에 이른다. 편한 일은 정규직 몫이고, 추락 사고 등의 위험이 많은 용접과 도장 등은 하청노동자 몫이다.

김씨가 “반강제적”이라고 말한 것은 이들의 근로조건을 지켜줄 노조도 없고 법도 멀기 때문이다. 10여년 동안 조선소 밥을 먹은 김씨는 “노조를 만들려고 왜 안 해봤겠느냐”며 “노조가 생기면 원청에서 도급을 주지 않는데, 일이 없으면 어디 가서 먹고사나”라고 했다.

그렇다고 정규직 노조에 기대할 것도 없다. 그는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를 내걸기는 하지만, 진짜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고 담담히 말했다.

2010년, 조선업은 경기불황에 따른 수주 감소로 구조조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씨는 “난 구조조정이 겁나지 않는다. 삼성중공업을 가든, 에스티엑스를 가든 사내하청은 어차피 월급이 같다. 사내하청을 없애지 않는 이상, 죽어라 일하고 착취를 당하는 것은 똑같다”고 말했다. 그가 겁내는 것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함께할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거제/글·사진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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