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북새통 전철 피해 버스 탔더니 ‘부천~공덕 3시간’

등록 2010-01-04 21:00수정 2010-01-04 21:11

20cm 이상의 폭설이 내린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월드컵경기장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cm 이상의 폭설이 내린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월드컵경기장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겨레’ 이종규 기자의 출근기
여의도행 버스 탄지 1시간…지하철 2개역 거리도 못가
자포자기 심정 ‘지각 보고’…공덕동까지 ‘잔혹한 출근’

아침 6시50분, 요란한 알람 소리에 눈을 뜨니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들이민다. ‘경기 지역 대설특보 발령.’ 재난경보 문자메시지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 보니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도로에는 이미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눈이 수북이 쌓였는데, 하늘에서는 굵은 눈발이 쉴 새 없이 흩뿌리고 있다. 온 세상이 회색빛이다.

 


‘새해 첫 출근인데…’ 하는 생각에 평소보다 이른 7시30분께 경기 부천시 소사구 범박동의 집을 나섰다. 큰길에 이르니 엉금엉금 기는 차들과, 버스를 타려고 차도에 내려선 사람들로 아수라장이다.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출근 준비하는 아내에게 알릴 필요가 있겠다 싶다. “차 갖고 나올 생각일랑 아예 안 하는 게 좋겠어.”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거리에서 주변 스노보드전문점 직원이 한쪽으로 치워진눈을 쌓아놓고 스노보드를 타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hani.co.kr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거리에서 주변 스노보드전문점 직원이 한쪽으로 치워진눈을 쌓아놓고 스노보드를 타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hani.co.kr

버스가 정류소에 도착할 때마다 사람들이 달려드는 통에 버스 몇 대를 그냥 보내고서야 겨우 지하철 1호선 역곡역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평소 10분가량 걸리는 길인데 오늘은 20분이 훌쩍 넘는다. 역곡역에 도착하니 8시10분께. 내심 ‘그래도 전철만 타면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계단을 올랐다.

그러나 이게 웬일? 역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광경은 기대를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승강장은 물론, 개찰구부터 승강장에 이르는 계단까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에 조바심이 났다. 급기야 승강장에 있던 몇몇 승객들이 전철을 포기하고 인파를 거슬러 계단을 올라온다. 마음이 급해진 나도 덩달아 버스 정류소로 발길을 옮겨 서울 여의도행 버스에 몸을 맡겼다. 그러나 그 찰나의 선택이 ‘불행의 시작’이었을 줄이야.

조금 달리는 듯하던 버스는 몇 분 만에 멈춰섰다. 눈폭탄에 발이 묶인 새해 첫 출근길 경인로는 차라리 거대한 주차장에 가깝다. 버스에 갇힌 승객들은 내남없이 휴대전화를 꺼내 회사에 지각 사태를 보고하느라 바쁘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정류소도 아닌 곳에서 내리는 시민도 한둘이 아니다.

02
02
버스를 탄 지 1시간째. 여전히 서울 구로구 오류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곡역에서 오류역까지 전철로 두 정거장에 불과한 거리인데 오늘처럼 아득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휴대전화에 날아온 재난경보 문자메시지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부천 일부 구간의 진·출입이 아예 통제됐음을 알린다. 오히려 마음이 느긋해진다. 명실상부한 ‘재난 상황’ 아닌가. 지각 좀 하기로서니 대수랴. 회사로 용감하게 문자를 날렸다. “완전 주차장임다. 출근 늦겠습니다.”

버스에 탄 지 1시간50분이 지난 10시께, 반가운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신도림역입니다.” 신도림역은 경인로에서 가장 가까운 1호선 전철역이다. 내리자마자 종종걸음을 치며 역으로 내달렸다. 정신없이 전철에 올라 시계를 보니 10시3분이다. 역곡역에서는 지연 운운하며 발길을 돌리게 만들더니, 야속한 전철은 별탈없이 잘 달린다. ‘그러게 누가 버스 타래’ 하고 내 선택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하철 5호선 공덕역에서 내려 회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36분. 집을 떠난 지 정확하게 3시간6분 만이다. 평소 같으면 1시간10분이면 충분한 출근길이니, 이 정도면 ‘고군분투’라고 너스레 떨어도 봐줄 만하지 않을까.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특집화보] 새해 첫 출근길 폭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