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유채림씨가 7일 오전 지구단위계획으로 철거가 시작된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신의 두리반 식당 뒤 철거현장을 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동교동 민간 개발 철거현장, 엄동설한에 세입자 쫓아내
“권리금 1억에 들어왔는데 3백만원 받고 나가라니…”
식당안서 13일째 홀로 농성
“권리금 1억에 들어왔는데 3백만원 받고 나가라니…”
식당안서 13일째 홀로 농성
성탄절 전날인 지난달 24일 오후 4시께. 영업 준비에 한창이던 서울 마포구 동교동 홍익대 근처 안종려(52)씨의 식당 ‘두리반’에 건장한 사내 20여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탁자와 의자, 조리기구 등을 닥치는 대로 들어냈다. 식당에는 안씨와 아르바이트 점원 등 여자 둘만 있었다. 사내들은 안씨를 밖으로 내쫓고 식당 주변에 철판을 둘러쳤다.
“이렇게 추운 날, 그것도 성탄절 전날에 갑자기 들이닥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기에, 안씨는 이튿날 새벽 용역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철판을 뜯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전기마저 끊긴 곳에서 스티로폼을 깐 채 농성을 시작했다.
며칠 뒤 ‘용산참사’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씨는 곧바로 마포구청을 찾아가 구청 도시관리국장에게 “제발 동절기 철거는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구청 권한이 아니다”라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농성 13일째인 7일 오후. 안씨의 식당은 폭격을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식당 한편에 쌓아올린 라면 상자 위에서 촛불이 홀로 타고 있었다. 남편인 소설가 유채림(50)씨와 그가 속해 있는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이 찾아와 농성을 돕고 있다. 농성장 뒤쪽에선 포클레인이 연신 빈집들을 뭉개며 안씨를 위협했다.
안씨의 식당은 동교동 ‘마포 지구단위계획’ 철거지역에 있는 11군데 세입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았다. 2년 남짓 협상 과정에서 지칠 대로 지친 다른 세입자들은 최근 800만~2100만원의 이주보상비를 받고 떠났다. 그렇지만 안씨는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5년 전인 2005년 3월, 안씨는 이곳에 두리반 식당을 열었다. 권리금 1억원은 찜질방 청소 등으로 마련했다. 한창 열심히 일하던 2007년 11월, 갑자기 ‘내용증명서’ 한 통이 날아왔다. 새 건물주가 ‘건물이 팔렸으니 가게를 비워 달라’고 했다. 이전 건물주와는 2008년 3월까지 계약이 돼 있었지만, 건물주가 바뀌고 계약기간마저 끝나버려 ‘임대차보호법’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이곳은 2006년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 구역에 포함됐다. 근처에 경전철이 놓인다는 소식에 집값이 치솟았다.
“새 건물주는 처음에 이주비로 300만원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권리금도 못 받은 상황에서 이 돈으로는 새 장소를 찾을 수 없었어요. 버틸 수밖에 없어요.”
특히 이곳은 공영 재개발지역이 아니라 민간사업자가 철거하는 곳이어서 용산참사 이후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의 보호도 받지 못할 처지다.
안씨와 같이 세입자들이 ‘소규모 민간개발’ 과정에서 보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남철관 ‘나눔과 미래’ 주거사업국장은 “건물 주인이 건물을 새로 세우거나 팔면서 세입자들이 보상을 제대로 받는 못하는 일이 흔하다”며 “사인간의 관계라 법적 보호를 못 받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안씨의 바람은 장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 건물주 쪽은 ‘법대로’를 주장하고 있다. 재개발을 추진중인 남전디앤씨(D&C)의 간부는 “안씨가 그동안 무리한 요구를 해 협상이 되지 않았다”며 “아직 안씨에게 제안하진 않았지만, 보증금(1200만원)의 두 배 정도까지는 보상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울 철거와 관련해선 “철거 안내문을 두 차례나 보냈고, 공사 지연으로 우리 쪽 피해도 커져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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