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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절망의 땅에서 희망을 찾다

등록 2010-01-22 08:39수정 2010-01-22 15:40

아이티 여성이 20일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미군 82공수사단 병사들이 나눠주는 물을 받기 위해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 있다.   포르토프랭스/ AP 연합뉴스
아이티 여성이 20일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미군 82공수사단 병사들이 나눠주는 물을 받기 위해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 있다. 포르토프랭스/ AP 연합뉴스
[아이티 지진참사] 권태호 특파원, 비극의 현장을 떠나며




20일 오전 9시40분(현지시각) 비행기가 이륙했다. 14명의 유엔 직원, 민간단체 회원, 의사, 기자 등이 하루 한 편만 운항하는 유엔군 수송기를 타고 아이티를 떠나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로 향했다. 오는 당일 밤, 가벼운 여진으로 환영인사를 한 아이티는 이날 아침에도 진도 6.0의 환송 인사를 잊지 않았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본 포르토프랭스는 고대 유적지 같다. 겨우 5일, 시간으론 90시간20분 동안 이방인으로 아이티에 머물렀을 뿐인데,‘아이티 이전 생활’이 까마득하다. 손과 발, 얼굴에는 모기 물린 자국이 훈장처럼 점점이 돋았다.

아이티에서 지진 참상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 최소한의 성정도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최악의 가난은 측은함에 앞서 분노를 일으켰다.‘죽고 사는 것 보다 먹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곳’이라 이해하려 애를 썼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에도 지극히 담담한 모습은 떠날 때까지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시체가 굴러다니는 옆을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며‘이 나라에 희망이란 게 있을까? 10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오만한 생각도 먼짓바람 속에서 끊이지 않았다. 옆 나라 도미니카도 우리나라 70~80년대 풍경인데, 아이티를 들어갔다 다시 나오니, 선진국도 이런 선진국이 없다.

가랑비가 내려 시야가 흐릿해졌지만 와이퍼는 작동 않고, 현지인 운전자는 오른손으론 핸들을 잡고, 왼손을 뻗어 앞유리창을 닦으며 차를 몰았다. 어딜 가나 바글바글한 사람들, 길 막히면 창문 올리기 바빴고, 비포장·밤길 운전에도 강도가 못 덤비게 절대 속도를 안 늦춘다.

그러나 아이티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이티 사람들이 예전에는 참 순박했다”고 말한다. 이전에도 못 살았지만, 2004년 내전, 2008년 네 차례 허리케인, 그리고 올해 지진 등 쉼 없이 닥치는 시련에 민심이 급속도로 흉흉해졌다는 것이다. 구호물자가 전달되면서 민심이 조금 안정되고 있는데, 실업률 70%의 나라에서 구호물자를 언제까지 얼마나 퍼부을 수 있을까? 빈민촌 시티솔레 지역의 젊은 목사인 에집 엘리슨(28)은 “아이티는 가능성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상태는 점점 나아질 것”이라며 “아이티에 희망을 달라”고 말했다.

지난 연말, 워싱턴에서 옛 평화봉사단 단원들 동창회가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그들은 한결같이 60년대에 그렇게 못살던 한국이 발전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똑같은 이야기를 사람만 번갈아가며 계속 했다. 이제 그들의 느낌이 어떠한지, 그들이 왜 놀랐을지 어렴풋이 짐작된다. 할아버지가 되면 아이티도 그렇게 바뀌어 있을까? 지금은 아이티를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지만, 그런 날이 와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티가 전세계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지진으로 숨진) 10만명의 죽음이 구호물자 몇 봉지로 바뀌진 말아야 할 터인데.

포르토프랭스, 산토도밍고 권태호 특파원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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